궁보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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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8.14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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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로서 행세할 수 있는 그곳은 도저히 회복이 불가능합니다."
36. 소용돌이 속에서

"저어, 그럼 저희들은 이만."

강치 일행은 주성에게 정중히 작별 인사를 올린 후 급히 서둘러서 떠나려고 했다. 자칫 머뭇거리다가는 무슨 빌미라도 잡혀 그들이 또 무슨 봉변을 당하지 않을까 두려워서였다.

"아! 잠깐!"

주성은 가벼운 손짓으로 그들의 행동을 제지시킨 후 천천히 이렇게 다시 말을 이었다.

"너희들은 외지인(外地人)들이기에 잘 모르는가 본데, 우리 팔결성에는 이런 규칙이 있느니라. 아니, 규칙이라기보다는 이건 오랜 관습이요 전통이라고 볼 수가 있는 것이지."

"네에 그, 그게 무슨"

강치가 몹시 두려워하는 기색으로 주성을 빤히 쳐다보았다.

"별거 아니야. 죄가 있든 없든 일단 관가로 한 번 불려왔다가 나가는 사람들은 관가의 일을 조금 도와준 뒤에 나가는 것이지. 자, 너희들도 이런 일 좀 해줄 수 있겠느냐"

주성이 지금 잔뜩 겁에 질려있는 강치 일행을 천천히 다시 둘러보며 이렇게 물었다.

"네에 아이고, 물론입니다요."

"잘 할 수 있습니다요. 무슨 일이든지 할터이니 제발 시켜만 주십시오."

"화끈하고 깔끔하게 잘 해놓겠습니다요."

강치 일행은 또다시 주성을 향해 허리를 굽실거려가며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사실 이들은 조금 전까지 혹독한 고문을 당했었기에 온몸이 욱신거리고 두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는 등 가만히 서있기조차도 힘이 들 지경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것저것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어떻게 하든지 이 지긋지긋한 곳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은 것이 이들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좋다! 그럼 너희들은 저 웅덩이 안으로 들어가서 내 맘에 쏙 들도록 좀 더 깊숙이 파놓고 돌아가거라."

주성은 이렇게 말한 뒤 부하들에게 명령하여 강치 일행에게 삽과 괭이 등등 땅을 파낼만한 연장을 내어주도록 했다. 강치 일행은 썩 내키지 않는 기분으로 연장을 받아가지고 주성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웅덩이 쪽으로 다가갔다. 두어길 정도 되는 깊이에다 사방 오십여 자 정도 되어 보이는 제법 큼지막한 웅덩이 안은 나무토막이나 자갈 등등이 전혀 섞여있지 않은 보드라운 흙뿐이기에 이들이 좀 더 깊게 파내는 데에 그다지 큰 어려움이 없었다.

이들은 연장을 가지고 웅덩이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정말로 열심히 땅을 파내기 시작했다. 죽느냐사느냐하는 막막한 기로에 있고 보니 지금 이들은 고문으로 인한 신체적 고통 따위는 아예 신경쓸 겨를조차 없었다.

한편, 이번 사건에 관련된 조사 보고를 드리고, 또 문병도 할 겸해서 오근장 성주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려던 창리는 때마침 그곳에서 나오는 의원과 마주쳤다.

팔결성 뿐만 아니라 인근 일대에서 명의(名醫)로 소문이 자자한 '양청'이라는 이름을 가진 50대 초반의 사내였다. 창리는 그를 보자마자 얼른 후미진 구석 쪽으로 데리고 가서 낮고 묵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성주님 몸은 어떻소 괜찮겠소"

"괜찮기는요 그곳이 그냥 데인 정도가 아니라 아예 홀라당 태워진 상태인데."

"그럼 낫기가 어렵단 말이요"

"제가 온갖 정성을 다해가며 지금 열심히 치료하고 있으니 낫기야 낫겠지요. 하지만 남자로서 행세할 수 있는 그곳은 바싹 구워져 버렸기에 도저히 회복이 불가능합니다. 본디, 생고기가 군고기로 되어질 수는 있어도 군고기가 생고기로 되어질 수는 없으니까요. 그럼에도 성주님께서는 어떻게 하든지 무슨 수를 써서든지 그곳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전과 똑같이 써먹을 수 있도록 해달라시니 저로서는 그저 난감할 따름이옵니다. 이건 마치 아이를 몇이나 뽑아낸 유부녀의 그곳을 숫처녀의 그곳과 똑같이 만들어 보라는 무리한 명령이나 마찬가지이니. 이건 천하의 명의(名醫)일지라도 고개를 가로 내저을 일입니다요."

의원 양청은 자기 딴에 무척 괴로운 듯 한숨을 푹푹 내쉬어가며 이렇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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