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협’보다 유권자들이 나서야
‘변협’보다 유권자들이 나서야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3.02.18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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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보은·옥천·영동)

대한변호사협회(변협)가 그제 검찰에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수사 의뢰했다. 오 전 시장이 재임 중 이른바 ‘새빛둥둥섬’ 사업을 추진하며 업무상 배임을 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새빛둥둥섬’은 오 전 시장이 자리를 걸다시피했던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의 핵심 사업이었다. 각각 컨벤션홀과 레스토랑, 문화와 엔터테인먼트, 수상스포츠를 중심으로 한 3개의 섬을 만드는 것이 사업의 골격이다.

변협은 급격한 물가변동 등 불가항력의 사유가 아니면 사업비를 변경할 수 없는데도 서울시가 시행업체와 두 차례나 협약을 변경해 총투자비를 662억원에서 1390억원으로 갑절 넘게 늘렸다고 밝혔다. 시행업체가 투자비 회수를 위해 새빛둥둥섬을 무상사용토록 한 기간도 20년에서 30년으로 늘려줬다고 주장했다.

변협의 이같은 주장은 이미 지난해 서울시 자체 감사에서 드러난 내용들이다. 당시 감사에서는 시의회의 동의절차와 공유재산심의위원회의 심의를 무시한 채 공사를 강행한 정황도 드러났다. 사업비를 부풀리기 위해 연간 1억원이면 충분한 하천 준설비를 10억원으로 늘려잡고, 수입은 누락시키는 편법을 동원했다는 지적도 받았다. 시가 법령까지 위반해가며 민자사업자의 이익에 종사했다는 얘기가 된다.

변협은 경기도 용인시의 경전철 사업도 비슷한 예산 낭비 정황이 있었다고 보고 시민들과 함께 주민감사를 청구하기로 했다. 이밖에 강원도 태백시 오투리조트, 평창군 알펜시아 등 다른 지자체의 비슷한 사례들도 조사해 조치할 계획이라고 한다.

인권옹호와 국가정책 감시 등에 주력해온 변협이 이번처럼 지자체의 방만한 예산 운용을 표적으로 삼아 수사를 의뢰하기는 처음이다.

실제로 수사로 이어질지, 수사가 착수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미지수이지만 그동안 지자체들의 혈세 낭비에 부글부글 속을 끓이던 국민들 입장에서는 변협의 넓어진 오지랖이 고맙기만 하다. 단체장이 실적에 혈안이 돼 합리적 타당성 조사 없이 대규모 민자사업을 강행하는 바람에 재정에 깊은 주름살이 생긴 지자체가 전국에 부지기수이며, 개선의 징후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수익성이 없는 사업에 민자를 끌어들이려다 보니 투자자의 수익을 보장해주기 위한 갖가지 특혜를 짜낼 수 밖에 없다. 사업비를 대폭 늘려서 이익의 폭을 넓혀주는 것은 기본이고, 산업단지의 경우 미분양 용지를 떠안는 방식으로 리스크를 덜어준다. 민간사업자는 땅집고 헤엄치며 배를 채우고 단체장은 준공식때 한껏 치적을 폼내겠지만 해당 지자체는 나증에 뒷설거지로 반영구적 골병을 앓게된다.

우선 외부에 용역을 주는 사전 타당성 조사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말이 타당성 조사이지 대부분 용역은 주문자의 요구에 결론을 꿰맞춰주는 기계적 역할만 할 뿐이다. 수요를 잔뜩 부풀려 예측해 사업의 당위성을 확보해주고 면죄부를 만들어 주는 형국이다. 빗나간 예측은 민자사업자의 손실보전을 제도화한 최소운영수입보장제(MRG)와 맞물려 혈세 누수로 이어진다. 지난 국정감사에서는 최근 5년간 19개 기관에서 발주한 500억원 이상 규모 사업 262건의 사후평가 자료를 검토한 결과 절반인 126개 사업의 실제 수요가 예측치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는 자료가 제시됐다. 실제 수요가 예측치의 70%를 넘는 사업은 54건 에 불과했다. 도처에서 막대한 세금으로 사업자의 손실을 메꿔주는 재앙이 벌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무려 1조원을 들여 지난 2010년 준공하고도 아직 개통도 못하는 용인시 경전철이 대표적 사례다. 이 사업은 당초 외부용역에서 2012년 기준 이용객이 하루 15만명에 달할 것으로 예측됐다. 그러나 준공 시점에서 실제 수요는 3만명으로 떨어졌다. 적자가 불가피한 경전철을 방치하면서 용인시는 7700억원의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단체장이 유권자가 아닌 특정 개인이나 단체의 이익에 종사하는 경우 비리가 끼어드는 것은 당연하다. 어제 경전철 사업을 주도했던 전 용인시장이 법정 구속됐다. 공사를 동생과 측근이 운영하는 회사에 밀어주도록 압력을 넣고 하도급업체로부터는 금품을 받은 혐의다. 용인시처럼 지립도가 높아 사업 추진의 여력이 있는 도시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갑이 얄팍한 농어촌 지자체들에서도 규모만 다를 뿐 실속없는 사업으로 혈세를 축내는 사례가 비일비재한다. 재정이 어려운 지자체일수록 단체장이 분탕질한 뒷감당에 더 큰 출혈과 고통을 겪기 마련이다. 변협의 이번 수사 의뢰가 전국 사회단체들이 연대해 이 망국병 치유에 앞장서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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