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졸업식
이상한 졸업식
  • 정규호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비엔날레부장>
  • 승인 2013.02.14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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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정규호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비엔날레부장>

처음부터 심상치 않았다.

마지막으로 입어 볼 것이 분명한 졸업생들에게 3년 동안 정들었던 교복 대신 평상복을 입고 오게 한 이 학교는 변변한 강당조차 없어 학교 밖 공공장소에서 졸업식을 가졌다.

교복 착용을 금지 시킨 사정은 사회문제로 비화된 졸업식 뒤풀이를 차단하기 위한 궁여지책이라니, 이거야 말로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 아닌가.

소위 밀가루 세례와 날달걀 투척 등 눈살찌푸리게 하는 그들의 일탈과 그로부터 이어지는 소위 폭력성을 차단하기 위한 기성세대의 얄팍한 속셈이 숨어 있다.

그 궁핍한 예방은 그러나 추억을 소중히 간직하면서 정든 교복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싶었던 대다수의 순수는 이미 철저하게 무시되고 있으니, 일부의 일탈과 폭력성이 대부분의 정서를 억누르는 상징코드가 된 셈 아닌가.

하긴 졸업식장에 정복과 사복 차림의 경찰이 눈빛을 번뜩이며 잔뜩 감시를 게을리 하지 않는 섬뜩함도 그렇고, 행여 소중한 내 자식이 그런 버릇없는 무리들에게 휩쓸릴까봐 낚아채듯 서둘러 졸업식장을 빠져 나오는 부모들의 모습은 또 어떤가.

이 학교의 이상한 졸업식은 행사가 진행되는 내내 학부모와 내빈을 의아스럽게 했다.

졸업식은 처음에 졸업생들이 그동안 갈고 닦은 기량을 뽐내는 솜씨자랑으로 시작됐다.

이 학교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거나 이날 졸업식을 처음 본 사람이라면 이 학교가 무슨 특성화 학교인가 하는 착각에 빠지도록 하기에 전혀 모자람이 없을 지경이었다.

공연은 내내 요즘 청소년들이 열광하는 춤이거나 노래 아니면 난타 등 시종일관 대중예술의 장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기야 좋은 학교 진학과 오로지 공부, 공부 외에는 사실상 아무 것도 한 일이 없는 이들 세대들이 동아리 활동이라는 명목으로 이처럼 틈틈이 기량을 가꿔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대견하기는 하다.

하물며 연예만능, 혹은 연예 지상주의를 방불케 하는 극단의 엔터테인먼트의 시대를 감안하면 대중예술에 대한 저들의 열망을 졸업식장에서 까지 펼쳐보이게끔 하는 숨은 의도 역시 긍정의 발상이라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날 졸업식은 오로지 대중예술이 아니면 표현할 기량도, 갈고 닦거나 학습한 것을 펼쳐보일 일은 아무 것도 없는 듯한 공연은 오히려 학교교육의 한계치를 보여준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리고 교장선생님의 축사와 시상에 이어진 각 학급별 UCC 동영상은 또 어떤가.

아직 어린 중학교 졸업생, 그들 특유의 언어가 되다시피 한 욕설은 여과없이 졸업식장 전체에 전달되었으며, 시종일관 춤 아니면 달리 표현할 방법이 마땅치 않은 여린 일탈은 또 다른 획일성과 지극히 부족한 문화 다양성의 솔직한 고백이나 다름없다.

두 시간 가까이라는 졸업식치고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사람들은 내용에는 도대체 관심없이 동영상에 숨겨진 내 자식의 모습 찾기에만 골몰해 있고, 졸업생들은 그들 대로 어서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욕구를 감추지 못한 채 지루한 하품만을 하고 있었다.

그 뿐인가. 마지막 순서로 마련된 졸업의 노래는 보내는 이의 아쉬움과, 떠나며 새로운 세계에 발을 내딛는 졸업생의 눈물어린 다짐은 온데간데 없이 역시 대중가수의 노래를 합창하는데 그치고 말아 쉽게 이해하기 힘들었다.

더 기막힌 일은 졸업식 행사가 끝난 후의 일이다. 공공 장소를 빌려 쓴 탓에 식이 끝나기 무섭게 청소를 위해 빨리 장소를 비워달라는 안내방송 소리에 정든 선생님과 친구들과의 애달픈 석별의 눈물이 묻혀 버리는 졸업식은 차라리 비극이다.

졸업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며, 졸업생들은 이제 더 넓은 세상을 향한 힘찬 항해를 시작하는 것이라는 식의 상투적인 격려는 아예 크게 기대하지도 않는다.

다만 말초적인 대중성만이 난무하면서 그런 자극적인 문화로 극히 일부의 극단적인 일탈을 차단하겠다는 속셈은 너무 궁핍하다.

도대체 진지함이나 진정성, 그도저도 아님 차라리 인간적인 별리에 가슴 아파하는 순수함은 찾아볼 수 없으니, 그 어린 시절의 스산함은 어른의 책임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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