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적 코드가 된 힐링
문화적 코드가 된 힐링
  • 오창근 <칼럼니스트·충북참여연대 사회문화팀장>
  • 승인 2013.01.16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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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오창근 <칼럼니스트·충북참여연대 사회문화팀장>

언어는 시대를 반영한다.

시대를 관통하는 언어 속에는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뇌와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펄펄 뛰는 횟감처럼 언어는 살아 숨 쉬며 동시대를 사는 사람의 희망을 반영한다. 그러므로 언어는 시대상을 담는 그릇이며 채워지지 않는 욕구를 분출하는 도화선이기도 하다.

한때 우리 사회는 ‘대박 나세요.’, ‘부자 되세요’라는 말이 어려운 경제상황과 맞물려 회자했다.

텔레비전 광고는 둘째 치더라도 이제는 덕담처럼 건네는 일상어가 되어 버렸다.

로또 열풍처럼 한순간에 인생역전을 원하는 사회는 이미 건강성을 잃어버렸다. 땀의 대가가 아닌 투기로 한순간에 상황을 뒤집는 도박판과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물신주의(物神主義)로 인간의 욕망을 자극해 부의 축적만이 이 사회의 지고지순한 가치로 자리매김하는 부정적인 결과를 낳았다.

얼마 후 ‘정의란 무엇인가’란 하버드대 교수인 마이클 샌델의 책이 날개돋친 듯이 팔렸다.

이 현상을 두고 한국정치 상황을 고려한 마케팅이 대중의 소비 욕구를 자극했다는 일부의 평도 있지만 그만큼 우리 사회가 정의롭지 못하다는 의식이 저변에 깔려서 폭발력이 더했다. 하버드대 석학이라는 무게감도 있지만, 지방선거 이후 인사청문회에서 드러난 후보자들의 비윤리적인 행태와 비리, 성 접대 검사, 총리실의 민간인 사찰 등 특권세력의 독점적 권위를 이용한 반칙과 특권이 횡행하는 사회적 환경은 ‘정의’에 대한 의미를 재해석하는 광풍으로 몰아쳤다.

이러한 대중적 열기에 샌덜 자신도 ‘한국사회가 정의에 대해 갈구하기 때문’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인문학에 대한 높은 관심도 일부 작용했지만, 고질적인 정치 불신과 정의롭지 못하다는 사회현상을 덧입어 베스트셀러가 됐다.

2012년 한해는 ‘힐링(Healing)’이란 단어가 문화적 트렌드로 한국사회를 관통했다.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등 미래에 대한 불안과 현재의 암울한 정서를 어루만져 주는 책들이 독자의 각광을 받았다.

텔레비전 프로도 연예인과 유명인을 초청해 힐링이라는 간판을 걸고 활동하고 있다.

성철 스님의 말씀처럼 ‘마음 한번 돌리니 예가 극락이구나’ 하는 말처럼 현실의 문제를 잠시 내려놓고 자신을 돌아봄으로 위로를 받을 정도로 우리 사회는 강퍅해져 있다.

물론 이 안에도 상품가치를 높이 사 대중의 입맛에 맞춘 기업의 발 빠른 대응도 한몫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대선결과에 낙심한 국민 48%의 다수가 레미제라블이라는 영화에 나오는 젊은이들을 보며 힐링을 받았다고 하니 대다수 국민이 치료가 필요한 정신적 고통을 안고 산다고 봐도 무방하다.

상처는 위로받음으로 낫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내면에 든 불안감을 치유하기에 뭔가 부족함이 든다. 모든 걸 내려놓고 자신 앞에 놓인 문제를 객관화함으로 얻은 마음의 평정이 지속성을 갖을까도 의문이고, 세상이 갖는 구조적인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끌어들여 얻는 평화가 이 사회가 안고 있는 갈등 모두를 치유한다고 할 수도 없다. 또한, 치유는 나보다 더한 사람의 불행과 고통을 통해 얻거나 혹은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특수성을 보편화시킴으로 얻는 것도 아니다.

‘대박’과 ‘정의’, ‘힐링’이 갖는 의미는 인간의 내면에 꿈틀대는 자연스런 욕구라는 공통점이 있다.

공동체 삶을 통한 조화로움보다는 기회를 잡아채는 승부사처럼 일확천금을 누리고 싶다는 욕망과 정의롭지 못한 사회에 대한 피해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이는 마치 행복하지 못해 행복이란 단어가 남용되는 것처럼 국민의 억울하고 고단한 삶이 투영된 결과다. 2013년은 어떤 단어로 국민의 욕구가 분출될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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