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벽두 신선한 충격 ‘어떤이의 고향’
새해벽두 신선한 충격 ‘어떤이의 고향’
  • 문종극 기자
  • 승인 2013.01.06 21: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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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문종극 <편집국장>

누구에게나 ‘고향’은 푸근함과 그리움이 있다. 때론 안타까움도 있다. 정이 든 곳이며, 과거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고향은 충전기다. 지치고 힘든 사람들은 물론이고 여유있는 사람들도 모처럼 찾은 고향은 마음에 평안을 준다. 다시 힘을 얻게 한다.

그래서 고향은 엄마의 품과 같다고 한다. 외로움에 젖어있는 타지에서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절절하게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것과 같다. 고향과 엄마의 느낌은 같은 것이다.

고향은 늘 그 자리에 있다. 묵묵히 기다려 준다. 고단한 삶을 잠시 내려놓고 쉴 수 있는 곳이다. 고향은 기별없이 찾아가도 반갑게 맞아준다. 그리고 기꺼이 회포를 풀 수 있는 충분한 여유도 허락한다. 고향이란 두글자 앞에서는 권력과 부와 명예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의지할 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는 사고무친(四顧無親)도 고향을 그리워한다. ‘여우가 죽을 때 머리를 자기가 살던 굴 쪽으로 바르게 하고 죽는다’는 수구초심(首丘初心)은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비유한 것이다. ‘귀소본능’(homing instinct)이라는 말도 있다. 동물이 자신의 서식장소나 산란, 육아를 하던 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가 다시 그곳으로 되돌아 오는 성질을 말하는 것이다. 귀소성·회귀성이라고도 한다. 남대천을 떠난 연어가 멀리 북태평양 베링 해(Bering Sea)로 갔다가 알을 낳으러 다시 돌아오는 것도 이것이다. 푸근함·정겨움·넉넉함 등 헤일 수 없이 정 넘치는 단어를 모두 동원해도 완벽하게 표현할 수없는 고향의 소중함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예나 지금이나 대부분의 사람들의 가슴속에 보편적으로 자리하고 있는 고향에 대한 정의이다.

이 같은 고향을 노래한 은퇴자가 있다. 새해 벽두부터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충북 영동이 고향인 이병선씨(78). 그는 한일은행과 보람은행장을 지냈다. 고향인 영동에서 태어났으나 초등학교(매곡) 5학년까지만 살았다. 그 후 대전고와 서울대를 나와 금융인으로 현직을 마감할때까지 타지에서 살았다.

고향에서 산 날 보다 타지에서 산 날이 훨씬 많아 영동을 고향이라 부르기도 민망하지만 그에게는 늘 그리워하고 오매불망한 고향이었다. 어머니의 품이었다. 그는 타지의 현직에 있을때도 생활고를 겪던 고향 후배에게 5000만원이라는 거액을 선뜻 내주고, 기회 있을때마다 고향 마을회·부녀회 등에 수백만원씩 기금을 내놨다. 오로지 고향이라는 단 하나의 이유로 그는 그렇게 고향을 섬겼다.

그가 퇴직해서는 고향에 평생모은 전 재산을 털어놨다. 15억원을 고향인 충북 영동 인재 육성 장학금으로 내놨다. (재)장척문화재단을 설립해 고향 인재양성에 두팔을 걷어부친 것이다. 2006년 10억원, 2008년 2억원, 최근 3억원. 35년간의 ‘금융 인생’을 마감한 이씨가 부인과 함께 평생 모은 재산을 고향에 헌납한 것이다. 이 재단은 해마다 매곡면 성적우수 학생과 선행·효행자 등에게 6000만∼7000만원의 장학금과 후원금을 나눠주고 있다.

이를 통해 장차 영동 매곡지역에서 오늘의 이병선씨와 같은 훌륭한 인재가 탄생할 것은 뻔한 일이다. 고향이 그렇게 만든다. 그런 고향을 어머니의 품으로 여긴 출향인이 또 그런 고향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또 다른 어떤이의 고향은 자신의 입신출세만을 위한 출생지에 불과하다. 객지에 나가 수백억의 재산을 모으는 성공을 했지만 고향은 그저 자신이 이용해 먹을 수 있는 하나의 이력에 불과하다. 그렇게 재산이 어마어마하지만 고향을 위해 쓰기를 내켜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정계 진출을 위해 고향을 판다. 그러면서 쥐꼬리 만큼의 재산을 어쩔수 없이 고향에 내놓는다. 당선을 위해 고향 사람들을 현혹하는 것이다.

어떤이의 고향이 아름다운가. 계사년 올해는 이병선씨와 이병선씨의 고향 같은 한해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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