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절초엽서
구절초엽서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2.10.17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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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는 세상

이정자

먼 산 가까워지고 산구절초 피었습니다
지상의 꽃 피우던 나무는 제 열매를 맺는데
맺을 것 없는 사랑은 속절없습니다
가을 햇살은 단풍을 물들이고 단풍은 사람을 물들이는데
무엇 하나 붉게 물들여보지도 못한
생이 저물어 갑니다
쓸쓸하고 또 쓸쓸하여
찻물을 올려놓고 먼 산 바라기를 합니다
그대도 잘 있느냐고,
이 가을 잘 견디고 있느냐고
구절초 꽃잎에 부치지 못할 마음의 엽서 다시 씁니다


◈ 가을은 풍성함 뒤에 쓸쓸함을 안겨줍니다. 초록으로 번져가던 성장은 이즈음이면 한풀 꺾어지고, 싱그럽던 생명의 기운도 빛이 바랩니다. 계절의 순환은 이미 겨울을 준비하게 합니다. 겨울을 배수진으로 두고 모든 생명을 겸손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봄에 피는 진달래보다 가을에 피는 구절초가 더 쓸쓸한가 봅니다. 꽃빛도 깊어지는 가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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