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져 가는 생활도구 <44>
잊혀져 가는 생활도구 <4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7.27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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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곡기
와릉와릉~장단맞춰 세상시름 터는구나
日서 개발해 우리나라에 들어와 벼·콩타작에 이용

해마다 9월 중순쯤이면 벼를 심은 들판이 누런 황금물결로 변해 보기만해도 풍요로움이 가득한 그런 계절이 된다. 콤바인이 보급되기 전인 80년대 이전에는 논에서 누렇게 익은 벼를 낫으로 베어 논바닥에 깔거나 단으로 묶어 세워 말린뒤 볏단을 집마당으로 옮겨 '타작(탈곡)'을 해 가마니에 담거나 퉁가리에 보관을 했다. 타작을 하는 날이면 동네 남정네들은 벼타작에 바쁘고, 아낙네들은 일꾼들이 먹을 음식을 만드느라 동동거리면서도 쌓여가는 볏가마니에 웃음꽃이 피기도 했다. 필자가 1957년 늦가을 친구를 따라 청주시내에서 가까운 청원군 어느 마을의 친구 누님댁을 찾아가 새참을 얻어먹고 친구와 함께 탈곡기를 돌리며 일을 거들어 주었던 추억이 생각난다. 마침 동네에선 벼타작을 하느라 '와릉와릉' 탈곡기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했다. 친구의 누님집에 들어서니 건장한 마을청년과 친구매형 등 6명이 바쁘게 타작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벼타작은 논에서 벼를 베어 말린 볏단을 마당 한쪽에 높다랗게 쌓아놓고 마당 한가운데 탈곡기를 놓은 다음 힘 좋은 장정 2명이 탈곡기에 붙어 한발을 탈곡기 페달을 힘차게 밟으면 쇠살이 촘촘히 박힌 둥근통이 '와릉 와릉'하며 돌아가는데 이때 1명은 볏단을 탈곡기 양옆에 가져다 놓고 이를 탈곡기 양옆에서 2명이 볏단을 풀어 한뭉턱이씩 탈곡기에 붙은 장정에게 건네주면 장정들이 탈곡기 페달을 힘차게 밟으며 역V자형의 쇠살이 박혀 있는 둥근통에 벼이삭을 얹으면 '타닥타닥'하고 벼알갱이가 떨어져 쌓였다.

첫번째 장정이 대충 벼이삭을 떨고 다음 사람에게 건네주면 이를 받아 알갱이가 다 떨어질때까지 통위에서 굴리고 나중 이삭이 다 떨어진 볏짚은 뒤쪽으로 던져져서 다시 볏단으로 묶어 쌓여진다.

벼타작을 하려면 보통 볏단을 탈곡기 근처까지 날라오는 일꾼이 1명, 탈곡기에서 발판을 밟고 벼이삭을 터는 일꾼이 2명, 이들에게 볏단을 알맞게 쪼개 주는 일꾼이 2명, 뒷편에서 빈짚을 단으로 묶는 일꾼 2명, 탈곡기 앞에 수북히 쌓이는 알곡을 갈퀴로 긁어내며 지푸라기 등 잡티를 제거하는 일꾼 1명, 가마니에 퍼담는 일꾼 1~2명 등 적어도 10여명의 일꾼이 있어야 일사불란하게 타작일이 진행됐다.

탈곡된 알곡은 가마니에 넣어 쌓았다가 볕이 좋은날 멍석에 널어 건조시킨 다음 방앗간으로 옮겨져 쌀로 찧어내 우리들 밥상에 오르게 된다. 필자는 당시 생전처음 탈곡기 페달을 밟아 봤는데 혼자의 힘만으로는 되지 않고 두 세 사람이 호흡을 맞춰야 빨리 돌고 능률을 올릴 수 있었다.

타작을 한지 30분이 지나자 땀이 비오듯 흐르고 다리에 힘이 빠져 허덕허덕 거리는데 끈기 있는 농부들을 따를 수가 없었다.

한 시간쯤 타작을 도우면서 숨도 가빠지고 먼지 투성이에다 땀에 젖은 몰골이 비틀비틀, 결국 친구나 필자는 뒤로 물러나 농부들의 수고로움을 실감한 적이 있다.

탈곡기는 일본에서 개발돼 우리나라에 도입되면서 벼타작뿐만 아니라 콩타작 등 여러모로 활용되었다. 탈곡기가 보급되기 전에는 절구통에 볏단을 메쳐 타작을 하거나 쇠로 만든 벼훑기로 벼이삭을 훑어서 타작하는 비능률적인 타작을 해왔다.

절구통 타작은 주로 보리나 밀타작을 했는데, 1960년대 경운기가 개발되면서 경운기를 활용한 기계타작이 인기를 누리는가 싶더니 1980년대에는 벼를 베는 동시에 탈곡이 되고 자루에 담기기까지 하는 콤바인이라는 기계가 도입돼 전통적으로 낫으로 벼를 베어 볏단을 세워 말렸다가 탈곡기를 밟아 벼이삭을 터는 방식은 사라졌다.

앞서 얘기한 대로 탈곡기를 이용해 벼타작을 하려면 장정 10여명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 우리 농촌의 현실이 젊은이들은 모두 도시로 나가 살고 60세 이상의 노인들만이 있어 탈곡기를 돌릴만한 기력마저 없어졌다.

더군다나 콤바인이 도입돼 '와릉와릉'탈곡기는 헛간 구석에 방치되고, 40세 이상 과거 농촌에서 산 경험이 있는 사람들의 추억속에서나 찾을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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