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서 과거사 논쟁 종식하는 계기로 삼자
대선서 과거사 논쟁 종식하는 계기로 삼자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2.09.24 21: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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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영동)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24일 이른바 '과거사'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던 기존의 입장에서 크게 후퇴했다. "정치에서 목적이 수단을 정상화할 수 없다"며 5·16과 유신, 인혁당 사건 등을 간접 비판했다. "헌법 가치가 훼손되고 대한민국 정치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사과하고, 그들의 아픔과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여야는 물론 상대 후보들도 박 후보의 이날 발언을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안철수 후보는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정말 필요한 일을 했다"고 평가했다. 문재인 후보 측은 "제대로 된 화해는 몇 마디 말이 아니라 진정성 있는 실천에 있다"는 비판을 달았지만 "변화된 인식을 보여준 것은 평가할 만하다"고 했다. 민주통합당도 "전향적이고, 당시 피해자들에게 사과한 것은 높이 평가한다"고 논평했다.

유권자들도 이날 박 후보의 기자회견에 의미를 부여하는 분위기이다. 무엇보다 이번 대선에서 소모적인 과거사 논쟁을 종식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일각에서는 박 후보의 이날 발언을 놓고 시의성과 진정성을 꼬집는다. 지지율이 계속 떨어지자 마지못해 입장을 바꾼 것 아니냐는 시각이 적지않다. 실제로 박 후보는 '대법원의 인혁당 판결은 두 개'라는 등 잇단 과거사 발언으로 논란을 야기한 후 퇴행적 역사인식이 도마에 올랐고, 지지율도 하락세를 이어갔다. 자신의 대선 캠프에서조차 국면 전환용 결단이 필요하다는 요구를 받아온 박 후보 입장에서 이날 기자회견은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정략적 회견 아니냐는 비판은 앞으로 박 후보가 후속 조치를 취해가며 스스로 극복해나갈 숙제로 남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안철수·문재인 후보의 말마따나 박 후보의 이번 회견은 쉽지않은 일이었다. 부모를 부정하는 행위는 우리 사회에서 금기에 해당된다. 대선 후보의 입장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박 후보가 일정 부분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행적을 부정하고 비판하기까지는 적지않은 고뇌가 따랐을 것이다. 딸의 입장이기도 한 박 후보가 나름 최대한의 수위를 정해 발언한 것으로 보여진다. 유권자들도 이 연장선에서 박 후보의 역사인식 재설정과 피해자에 대한 사과를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박 후보 스스로 말했듯이 그에게는 역사인식에 대한 국민과의 공감이 요구됐을 뿐이지, '아버지의 무덤에 침을 뱉는' 패륜이 요구된 것은 아니다. 설령 박 후보가 지지율 하락에 밀려 역사인식을 바꿨다 하더라도 그동안 겪었을 힘겨운 학습 과정은 사줄만 하지 않은가.

어쨌든 박 후보의 결단이 이번 대선에서 과거를 빌미로 삼아 상대 후보를 공격하는 행태가 중단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5·16과 유신 논쟁은 수 십년간 보수와 진보가 끊임없이 격돌해온 사안이다. 박 후보의 출마가 이 해묵은 논쟁거리를 다시 불러왔고, 급기야 딸이 아버지의 시대를 비판하는 역사적 장면이 연출되기에 이르렀다. 이 문제는 앞으로도 툭하면 진영간 논쟁으로 대두될 것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이번 대선에서 만큼은 이 과거사 논쟁이 미래를 향한 역동적 경쟁으로 대체되길 바란다. 정치권에 국민이 공감하지 않는 오만한 정치 소신은 결실에 이르지 못한다는 교훈을 안겨준 것에 만족하면서 말이다.

남은 것은 박 후보가 이번 회견에서 한 약속을 어떻게 실천하느냐 하는 문제이다. 박 후보는 기자회견에서 과거사 문제를 언급하며 국민의 아픔과 고통을 치유하는'국민대통합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했다. 달라진 역사관과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를 구두선에만 놓지않고 직접 행동으로 실천하겠다는 의지의 산물로 풀이된다. 당내에서도 앞서 출범한 국민행복추진위, 정치쇄신특별위원회와 함께 박 후보의 정치철학을 담아낼 핵심기구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위원회는 우선 인혁당 사건과 장준하 선생 사망사건 등 국민들의 관심을 갖는 주요 과거사에 대해 진상을 규명하고 피해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의 대책을 수립하는 힘든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국민들이 신뢰할 수 있는 인사를 위원장에 선임하는 것도 중요하다. 박 후보가 내놓은 '국민대통합위원회' 카드는 잘 못 썼다가는 다시 박 후보의 발목을 잡는 장애물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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