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명소에서 그들의 삶 기억하다
사제의 명소에서 그들의 삶 기억하다
  • 김금란 기자
  • 승인 2012.09.24 19: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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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성단~신창성당까지 12.6km 순례길 '김대건 길'
첨단 국제회의관·기숙사 갖춘 '김수환 추기경 국제관'

제주 금악리 위치 젖소·경주마 등 사육 '이시돌 목장'

낮은 자세로 가난한 자를 품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사제의 삶을 살다간 신부들이 있다. 그들의 삶을 기억하고 그들의 생각을 기리기 위해 사제 이름을 붙인 장소나 지명, 건물들이 있다. 김대건 길을 걸으며, 김수환 추기경 건물을 둘러보며 신심을 돌아볼 수 있는 장소를 소개한다.

◇ 김대건 길

제주교구는 지난 15일 제주특별자치도, 제주관광공사와 공동 개발한 '김대건길' 선포식과 개통식을 가졌다.

김대건 길은 고산성당에서 출발해 수월봉, 고산리 선사유적, 성 김대건 신부가 제주도에 표착한 용수성지 등을 거쳐 신창성당에 이르는 12.6km의 순례길로 약 6km에 이르는 '성 김대건 해안로'도 포함돼 있다.

특히, 용수리 포구는 김대건 신부가 1845년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사제 서품을 받은 뒤 라파엘호를 타고 귀국하는 길에 폭풍우를 만나 표류하다가 도착한 곳이다. 이곳에는 김 신부의 표착을 기리는 성당과 기념관이 있다.

제주교구 순례길준비위원회(위원장 현문권 신부)와 용수성지운영위원회(담당 허승조 신부)가 공동주관으로 개최한 선포식은 성 김대건 신부가 순교한 1846년 9월16일을 기념해 치러져 그 의미가 더욱 숭고했다.

선포식을 주례한 강우일 주교는 "우리가 걷는 김대건길은 해방과 구원의 길, 사랑과 평화의 길, 순교자들의 신앙을 묵상하는 길이 되도록 하자"고 말했다.

김대건 신부(1821.8.21 ~ 1846.9.16)는, 한국 천주교 최초의 신부이자 순교자이다. 금가항 신학교에서 탁덕(鐸德)으로 승품(陞品), 한국사람으로서는 최초로 신부가 되어 미사를 집전했다.

1857년(철종 8) 교황청에 의해 가경자(可敬者)로 선포되고, 1925년 교황청에서 시복(諡福)되어 복자위(福者位)에 올랐다. 1984년 4월 내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다시 시성(諡聖)되어 성인위(聖人位)에 올랐다.

◇ 김수환 추기경 국제관

가톨릭대학교(총장 박영식 신부·부천시 원미구 역곡동) 성심 교정에는 2009년 9월 준공된 김수환 추기경 국제관이 있다.

'김수환추기경 국제관'으로 명명된 첨단 국제회의관과 기숙사를 갖춘 연면적 5만600㎡의 인터내셔널 허브관은, 지하 2층, 지상 16층의 기숙사와 지상 3층의 국제회의관으로 구성됐다.

김수환 추기경(1922.5.8(음력)~2009.2.16)은, 세례명 스테파노. 1922년 대구에서 독실한 가톨릭 집안의 막내로 출생해 1951년 사제 서품을 받았고 1969년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한국 최초의 추기경이 됐다.

◇ 이시돌 목장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에 있는 목장. 한라산 중산간지대의 16만 5000㎡에 자리하고 있다.

아일랜드 출신 패트릭 제임스 맥그린치 신부가 1954년 4월 콜룸반외방선교회 소속으로 제주도에 온 뒤 가난한 제주도민들에게 자립의 기틀을 마련해 주기 위해 1961년 11월 성 이시돌 중앙실습목장으로 개장했다.

이시돌은 중세 에스파냐의 농부로 하느님의 영토인 땅을 가꾸고 농사를 짓는 일에 열성을 다했다 하여 후에 로마가톨릭교회에서 정한 농민의 주보 성인(聖人)이 되었다.

1962년 비영리 사업을 위해 이시돌 농촌산업개발협회를 설립해 양을 키우고 양털로 양모 제품을 생산하는 한림수직과 사료공장 등을 운영하였다.

1969년부터 뉴질랜드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소·면양·종돈 등을 들여와 한때 100만 마리에 가까웠던 면양과 동양 최대의 돼지목장, 치즈·우유공장, 수천 마리의 소가 있었지만 지금은 젖소, 한우, 경주마를 사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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