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자기조절 능력
자연의 자기조절 능력
  • 김성식 기자
  • 승인 2012.09.17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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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식기자의 생태풍자
김성식 생태전문기자<프리랜서>

"3달 전에 우연히 들어온 바퀴벌레 1마리를 찾지 못했다면 여러분은 지금 800마리의 바퀴벌레와 아기를 같이 키우고 있는 중일 수도 있습니다."

국내 모 해충방제업체가 광고 중인 경구다. 언뜻 들어도 섬뜩하다. 그러나 현실에 있어서는 어떨까. 광고의 경구대로 실제 집안에 들어온 바퀴벌레(이하 바퀴) 1마리가 3달만에 800마리로 불어날 수 있을까. 바퀴의 번식력을 근거로 한 산술적 계산으로는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현실에 있어서는 십중팔구 불가능하다.

바퀴는 태생적으로 번식력이 왕성하다. 알려진 바로는 물과 먹이만 있으면 암컷 1마리가 연간 최대 10만개 이상의 알을 낳을 수 있다고 한다. 40만개까지 낳는다는 주장도 있다. 몸에 정충을 보관하는 능력이 있어 수컷과 한번의 교미로 여러 번 산란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기막힌 재주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바퀴가 갖고 있는 산술적 번식능력일 뿐이다. 그렇지 않고 이 엄청난 번식능력이 그대로 현실로 나타나 부화한 새끼들이 100% 생존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인간세계는 물론 자연계까지도 온통 '바퀴세상'이 될 것이다.

더군다나 바퀴는 따뜻한 기온을 좋아하기 때문에 최근의 지구온난화로 번식력이 갈수록 향상되고 있다. 뛰는 중에 날개를 얻는 셈이니 일부가 우려하는 '바퀴세상'의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가능성일 뿐이다. 바퀴의 번식력이 갈수록 향상된다고 해서 생태계가 실제 바퀴에 의해 완전히 점령 당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다. 비록 개체수는 눈에 띄게 많아질 가능성은 있을 수 있어도 바퀴가 무한대로 증식해 온 집안을 점령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이유가 뭘까. 한 마디로 서식 조건(환경)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태생적으로 습하고 따뜻하며 먹이가 풍부한 곳, 야행성이기에 낮에는 숨어 지낼 수 있는 공간 등 여러 서식 조건이 필요하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이러한 서식 조건이 항상 그리고 충분하게 갖춰지지는 않는다. 더군다나 인간이 사는 세계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오히려 사람들은 기회만 있으면 바퀴의 서식 조건을 더욱 악화시키려 하고 심지어 말끔히 제거하려고 한다. 그러니 무한대의 번식이 자연적이든 인위적이든 제약을 받게 마련이다.

우리는 30여년 전 황소개구리가 처음 도입돼 엄청난 식성과 번식력으로 생태계를 위협하기 시작했을 때 똑같은 우려를 한 바 있다. 황소개구리가 유입된 수역은 얼마 안가 생태계가 초토화될 것이라고 너도나도 우려했다. 그런데 어떻게 됐는가. 어느 시점부턴가 그 우려는 기우였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됐다. 황소개구리가 점령한 곳도 생태계가 초토화된 곳도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식용을 위해서건 퇴치를 위해서건 그동안 끊임없는 인위적 간섭이 있어온 데다 전에 없었던 천적까지 생겨났다. 게다가 성체는 물이 많이 괸 곳을 선호하고 올챙이는 몸집이 커 장마 때마다 하류로 떠내려가는 등의 생태적 특성으로 인해 번식에 많은 제약을 받아왔다.

이런 것이 자연이다. 인간세계와 접하고 있는 자연이든 온전한 생태계가 보전된 자연이든 어느 특정 종의 무한한 번식과 그로 인한 생태교란이 쉽사리 이뤄지지 않는다. 설령 어느 순간(특히 유입 초기)의 위협이 있을 지라도 어느 시점엔가는 평형을 되찾는다. 자연이 위대한 건 바로 이러한 자기조절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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