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이집트를 사랑한 클레오파트라
<2>이집트를 사랑한 클레오파트라
  • 유오재 <오송화장품 뷰티박람회 홍보부장>
  • 승인 2012.09.11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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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이야기로 만나는 '오송 화장품·뷰티 엑스포'

유오재 <오송화장품 뷰티박람회 홍보부장>

클레오파트라 7세, 그녀의 선조들은 원래 마케도니아의 귀족이었다.

B.C. 323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동방을 정복하고 나서 사망하자, 마케도니아의 주요한 장군들은 대왕의 유산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싸웠다. 그 싸움의 승리자 중 한명이 알렉산드로스의 친구이며 왕실의 친척이기도 한 프톨레마이오스 장군이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이집트를 접수하고 자신의 왕조를 건설하였으며, 그 이집트를 다스린 마지막 후계자가 바로 클레오파트라 7세(B.C. 69-30)였다.

그녀의 아버지 프톨레마이오스 12세는 클레오파트라와 그녀의 남동생 프톨레마이오스 13세에게 이집트의 공동통치권을 넘겼다. 고대 이집트의 관행에 따라 그녀는 남동생과 혼인관계를 맺고 공동통치를 했다. 하지만 남동생과의 권력 투쟁으로 심각한 위기에 처하게 되었을 때, 그녀를 도와 이집트를 단독으로 통치할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이 바로 그녀의 첫 사랑 율리우스 카이사르였다.

단아한 외모에다 여러 외국어에 능통하면서도 고운 목소리를 자랑했던 클레오파트라는 로마 제국의 집정관이며 유부남이었던 카이사르도 단번에 사로잡은 치명적인 유혹, 바로 그 자체였다.

카이사르가 로마에서 원로원 세력에 밀려 브루투스, 카시우스 등에게 살해당한 후 이집트로 돌아온 그녀에게 또 다시 찾아온 마지막 사랑은 로마의 집정관이며 역시 유부남이었던 미남 안토니우스였다. 그가 로마 본토의 옥타위아누스(후일 아우구스투스 황제)와의 패권 투쟁을 위해 이집트로 왔을 때 그녀의 사랑은 다시 시작된 것이다. 안토니우스와의 이야기는 사랑을 위하여 그리고 조국을 지키기 위하여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한 군주의 고뇌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결국 악티움 해전의 패전(B.C. 31)후 두 사람의 자살로 끝났던 비극이기도 했다.

그러면 고대 이래로 미의 아이콘이며 치명적인 유혹의 주인공이었던 클레오파트라의 화장술과 피부 관리법은 어떠했을까?

그녀는 석간주(분말로 된 붉은 안료)로 두 뺨을 붉게 칠했고 두 손바닥에는 헤너 물감(적갈색 염료)을 발라 젊음의 홍조를 띠게끔 했다. 또 눈썹은 검게 칠했고, 납 속에 들어있는 검은 방연광(연회색의 광택이 나는 광물)으로 만든 화장먹으로 눈꺼풀의 윤곽을 그렸다.

눈꺼풀의 윗부분은 흑청색으로, 아랫부분은 초록색으로 칠했다. 주름방지를 위해 향료와 진흙팩, 우유목욕, 포도주 세안을 즐겨하는 방법으로 미를 가꿨는데 특히, 진흙팩은 클레오파트라가 즐겨 썼던 미용법으로 사해에서 채취한 역철질 진흙에 갖가지 약초를 섞어 갈아서 이 액체를 가마에 넣고 끓여 화장품으로 만들어 아름다운 피부를 관리하는데 썼다고 한다.

내년 5월 충청북도 오송에서 화장품·뷰티 세계박람회가 24일간 개최된다. 전시장에 조성되는 월드 뷰티관에 클레오파트라가 등장하여 당시의 화장술을 선보인다고 하니, 고대의 시대로 되돌아가서 콧대 높은 클레오파트라를 한번 만나보는 것도 큰 의미가 있지 않을까?

'주사위는 던져졌다, 미호천 강을 건너' 오송으로 가는거야, '브루투스 너마저' 오송을 찾는다면, 박람회는 대성공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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