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지락 칼국수에 대한 생각
바지락 칼국수에 대한 생각
  • 정규호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비엔날레부장>
  • 승인 2012.08.30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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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정규호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비엔날레부장>

간밤에 모처럼 지인들과 술잔을 나눈 뒤 숙취에 헤매고 있을 때, 흔히 찾는 음식 가운데 바지락 칼국수를 빼놓을 수 없다.

더군다나 농민들을 울리는 줄도 모른 채 철없이 비가 내리는 날에는 뜨끈하고 개운하며, 속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바지락 칼국수의 유혹은 쉽게 떨쳐 버리기 어려울 지경이다.

태풍 덴빈이 한반도의 허리를 휩쓸면서 장대비가 쏟아지는 날, 나는 점심으로 바지락 칼국수를 먹었다. 커다란 유리창이 있는 칼국수집에서 처연하게 내리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바지락 하나 하나를 골라내다가 나는 문득 그 작은 조개 하나 하나를 캐기 위해 갯벌에 고개를 숙인 채 허리를 펴지 못하는 이 땅의 어머니들을 생각한다.

작은 조개 한 마리마다 고스란히 실려있을 늙은 어머니들의 고단함. 그 조개들 하나 하나마다 허리를 굽혀야 했던 경건함이 상상으로 그려지면서 괜스레 목이 매여 온다.

바지락에는 철분과 아연이 풍부하게 함유돼 있어 노약자나 임산부, 어린이에게 아주 유익한 식품으로 알려져 있다. 바지락은 또 담즙분비를 촉진시키면서 간장기능을 활발하게 해주는 효능이 있어 숙취의 해장으로도 그만이다.

때문에 상당수의 술꾼들은 술을 심하게 마신 뒤 습관적으로 바지락 칼국수를 찾아 보신을 하지만 정작 그 사이 바지락 하나 하나마다 오롯이 담겨있을 이 땅의 숭고한 어머니들의 고단함은 쉽사리 떠올리지 못한다.

세상 일이라는 게 다 그렇다. 그깟 몇 천원짜리 칼국수를 먹으면서 그 안에 담겨있을 고된 노동의 그림자를 읽어내며 산다는 것은 쉽지 않을 일이다. 아니 어쩌면 그런 세세한 신경을 쓰느라 머리 속이 복잡해지는 대신 그저 열심히 먹어주는 것만으로도 노동의 가치를 존중해 주는 것이며, 그 수고로움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충분히 있을 수 있겠다.

그리하여 그 수요를 통해 하루종일 허리 한 번 펴지 못하고 갯벌 속을 헤집는 어머니와 그 자식들이 따뜻한 밥을 먹고 공부하며, 그 억센 노동에서 벗어나 보다 편안한 일을 갖게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만들어 주는 일이라고 여길 수도 있겠다.

아무리 세상이 자본주의의 극치를 떨고 있다고 해도 모든 사람들이 편하고 쉬운 일만 하고 살아갈 수는 없는 법.

누구는 태풍 볼라벤의 강력한 바람 앞에서 전전긍긍하며 겁을 잔뜩 집어 먹고 있는 사이, 누구는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 여기며 희희낙낙하는 세태도 있을 테고, 그런 입장 차이는 지위나 형편 따위에 따라 그럴 수도 있는 일 쯤으로 치부하면 그만인 것이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애써 키운 일년 농사가 깡그리 소용없게 돼 버린 농민들에게 '심정이 어떠냐'면서 마이크를 들이대는 저널리스트의 속성은 결코 인간적이지 않다.

수확을 불과 며칠 앞두고 고이고이 기른 사과며 배 등 과일이 모조리 떨어져 망연자실하고 있는 농민에게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심정이라는 것이 과연 남아 있겠는가.

농익은 햇살을 듬뿍 받으면서 그저 풍요롭게 속살을 채워야 할 곡식들이 원망스러운 두번의 태풍이 동반한 비바람으로 인해 속절없이 무너지고 쓰러지는 처절함을 이 땅의 먹물들은 얼마나 헤아릴 수 있을텐가.

제 아무리 만물의 영장이니, 뭐니 하면서 잘난 체 해도 아직 인간의 능력으로는 뜻하지 않은 천재지변에서 완벽하게 자유롭지 못하며 철저하게 막아 낼 방도는 없다.

자연은 그렇게 인간을 지배하고 유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 셈인데, 때 늦은 태풍이 벌써 두 번이나 우리를 위협하는 것은 어쩌면 겸손하지 못하며, 매사에 감사할 줄 모르는 인간들의 오만함에 대한 경고는 아닌지 되새겨 볼 일이다.

그리고 이 땅의 어머니들, 그 허리굽은 수고로움을 너무 무심하게 여기며 사는 것은 아닌지도 깊게 깊게 되새겨 볼 일이다.

결코 반갑지 않은 장대비가 쏟아지는 8월 끝자락. 시끄러운 속을 달래기 위해 찾은 바지락 칼국수 집에서 이어지는 상념이 심상치 않다.

너무 멀리 나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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