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골 아저씨를 기리며
얼음골 아저씨를 기리며
  • 오창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12.08.29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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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오창근 <칼럼니스트>

상당산성 등산로에서 아이스크림을 팔며 매일 같이 얼음을 날라다 놓던 그분을 만난 것은 2년 전 4월이었다. 숱하게 어린이회관 등산로로 상당산성을 올랐지만 누가 얼음을 그곳에 갖다 놓는지 몰랐다. 그저 맘 한 켠에 고맙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그러다가 아침 일찍 산행하다 지게에 얼음을 지고 내려오는 그분을 만났고, 얼음을 갖다 놓게 된 사연을 들었다. 10만 원을 건네주며 얼음을 갖다 놓으라는 노인의 부탁을 받고 10년 가까운 세월을 거르지 않고 묵묵히 소임을 다하는 그분을 보고 ‘얼음골 성자’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썼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작년 가을 상당산성 가는 터널 입구에 있는 잘 가꾸어진 공원에서 저녁 무렵에 그분을 뵈었다. 정자에 앉아 산행으로 팍팍한 다리를 내려놓고 쉬고 있는데 오토바이를 타고 온 그분이 주위의 쓰레기통을 비우는 것을 보았다. 인사를 건네고 "이곳까지 와서 청소를 다 하세요"라는 물음에 "쓰레기가 있으니 당연히 제가 치워야죠." 하며 쓰레기통을 비우고 황급히 떠나는 뒷모습을 보며 선행의 반경이 넓음을 새삼 깨달았다.

만난 음식이라도 나오면 금세 사진을 찍어 지인들에게 자랑해야 직성이 풀리는 얄팍한 인심과 봉사도 대학 갈 때 도움이 된다 하니 억지 춘향으로 부모에게 끌려와 주머니에 손 넣고 시간만 때우다 가는 학생도 부지기수인 세태에 남들이 알아주지도 봐주지도 않는 곳까지 찾아와 선행하는 그분의 모습을 모며 부끄러웠던 기억이 난다. 그러면서도 주말에 가끔 산성에 올라가서도 어른이 아이스크림을 입에 무는 것이 멋쩍어 그분이 파는 아이스크림조차 넉넉히 팔아주지도 못했다. 늘 그렇듯 떠나야 그늘이 컸음을 알고 못내 미안해하는 심사를 잘 모르겠다. 

‘얼음골 아저씨’의 죽음에 사람들이 안타까워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속속들이 선행이 밝혀지면서 추모비라도 세우자는 의견이 있으나 이 또한 위법이라는 지적에 청주시가 망설이고 있다. 얼음이 있던 자리가 문화자원보존지구에 속해 현행법상 표석을 설치하려면 문화재 현상변경허가를 문화재청으로부터 받아야 하는 어려움과 불법노점상을 단속할 행정기관에서 추모비를 세운다는 것에 청주시가 난색을 보이고 있다.

그분이 지게로 얼음을 갖다 놓았던 그곳에 작은 돌 하나 세워 기념한다고 눈에 쌍심지 돋우며 비판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철 따라 산을 오르는 사람에게는 얼음 덩어리에 잠시 손을 대보는 것이 전부이지만 매일 거르지 않고 산성까지 오토바이로 싣고 와 다시 지게로 운반하는 수고를 감내한 세월을 생각한다면 신중하게 검토해 어떤 형식이든 그분을 기념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심성이 모질고 강퍅해진다고 야단이다. 마음 한 조각 떼 내어 나누기보다는 삶이 억울하다고 길가는 행인에게 칼부림도 하고, 세상을 원망하며 목숨을 던지는 일도 다반사다. 숨을 헐떡이며 좌우를 돌아볼 여유도 없이 얼음골을 지나친 무수한 사람 속에 나 자신도 있다. 이름과 얼굴을 드러내는데 익숙한 세상에 방세 20만 원을 제외한 나머지 돈을 모아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기부하고 먼 곳까지 다니며 쓰레기를 치운 선행은 청주시민이 기려야 할 고상한 뜻이다. 온라인상에서 청주시가 어렵다면 뜻있는 사람들을 모아 작은 기념물 하나 만들어 그가 생전에 공들여 가꾼 얼음골에 놓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얼음이 사라진 ‘얼음골’을 지나며 사람들은 그분의 부재를 통해 선한 행적을 또렷이 기억할 것이다. ‘필요하신 물건 가져가시고 돈은 여기다 넣어 주세요’ 메모를 해놓고 근처 쓰레기통을 비우던 선한 마음은 상당산성 등산객의 마음에 오랫동안 남아 회자될 것 또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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