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회비, 육성회비, 학교운영지원비
기성회비, 육성회비, 학교운영지원비
  • 충청타임즈
  • 승인 2012.08.28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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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연규민 <칼럼니스트>

늦게 둔 아들이 중학생이다. 여러 가지 벌여 놓은 일이 많아 체험활동이나 추억만들기를 큰 아이 키울 때처럼 함께 해주지 못해 늘 죄진 기분이다. 그러다보니 엄하게 키우거나 많은 교육을 시키지 못해 학교생활이 늘 뒤쳐진다. 무슨 종이를 내밀며 무조건 인적사항 적고 도장을 찍어 달란다. 자세히 보니 아들의 학교운영지원비를 어딘가로 부터 내가 부담해야 할 몫을 대신 지원을 받고 싶다는 내용이다. 아무리 생활이 어려워도 자식 학교 월사금이나 급식비 못 내주랴 싶은데 기분 참 찜찜하다.

며칠 뒤 아침신문을 보고 그 신청서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초ㆍ중등교육법 제30조의2 제2항 제2호 등에 대해 위헌 결정을 하였기 때문이다. 학교운영지원비를 의무교육이 실시되고 있는 마당에 학부모들에게 징수하는 것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8월 23일 있었다. 이 부분이 위헌이라는 결정이 선고될 것으로 예상한 교육당국이 미리 조치를 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 방식이 납득하기 어렵고 학부모의 마음을 참 비참하게 만들고 말았다.

형편이 아주 어려운 가정에는 아이 교육비를 어딘가로 부터 지원해 달라고 애걸하는 굴욕감과 비참함을 안겨주었다. 그래도 형편이 나은 가정에는 무상교육이라며 강제적으로 스쿨뱅킹에서 공제해 가더니 갑자기 지원신청이라는 걸 하라고 하니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고 불쾌하기도 하고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당황스러움을 안겨주었다. 신문보도를 보면 그 어딘가는 결국 교육청이고 재원의 궁극은 국민의 세금이다. 참 기분 더럽다. 내가 낸 세금에서 사용하는 걸 구차하게 의무교육이라고 하고는 지원해달라고 애걸하는 꼴이라니….

많은 국민들에게 기성회비나 육성회비는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칠판 한옆에는 육성회비 안낸 사람 이름이 죽 적혀 있었다. 때로는 실적을 강요당하는 교사로부터 육성회비를 못낸 학생들은 매질을 당하기도 하였다. 아침 등교시간에 육성회비를 안 주면 학교 가지 않겠다고 떼쓰는 어린이들의 모습이 일상처럼 되어 있었던 적도 있었다. 기성회비는 육성회비로, 학교운영지원비로 이름만 바꾼 채 아직까지도 살아남아서 유령처럼 떠돌고 있었던 것이다.

공룡의 모습으로 변한 기성회비도 있다. 국립대의 기성회비가 그것이다. 5년여 전 우리 지역의 국립대학 등록금은 150만원 내외였다. 이 중 수업료는 3분의 1이 채 못 되었다. 3분의 2 이상이 기성회비였다. 교육부의 감독을 받지 않고 사용하는 금액이 훨씬 많았다는 것이다. 이미 이 부분 하급심 법원의 판단은 부당한 것으로 내려졌다. 상급심이 진행 중인 것으로 보도된 바 있다.

어쩌다 우리 사회가 비상식적인 것이 상식적인 것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특히 배움의 길에 있는 학생들에게 상식과 정의와 합리적 사고를 가르쳐야 할 교육당국에서 이런 일이 유난히 많은 것은 우리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 설령 미처 생각하지 못하여 이런 일이 발생했다 하여도 그간의 관행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고 분명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말인지,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의아한 조치를 취하는 것은 무엇인가? 교육당국자는 헌법재판소의 결정문을 천천히 읽어보며 다시 생각을 정리하시길 바란다.

"헌법 제31조 제3항에 규정된 의무교육 무상의 원칙에 있어서 무상의 범위는 헌법상 교육의 기회균등을 실현하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비용, 즉 모든 학생이 의무교육을 받음에 있어서 경제적인 차별 없이 수학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비용에 한한다. 의무교육이 실질적으로 균등하게 이루어지기 위한 본질적 항목으로 수업료나 입학금의 면제, 학교와 교사 등 인적·물적 기반 및 그 기반을 유지하기 위한 인건비와 시설유지비, 신규시설투자비 등의 재원마련 및 의무교육의 실질적인 균등보장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비용은 무상의 범위에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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