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백운리서 보은 종곡리까지 (1)
<6> 백운리서 보은 종곡리까지 (1)
  • 충청타임즈
  • 승인 2012.08.23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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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수 대장의 '충북을 걷다' 추풍령에서 도담삼봉까지
길을 희망을 만들어 내는 과정

만월리~백운리 연결 고백이 고개
日강점기 자원이동 탓 넓은 길 형성

만월리 지나 오그재서 길 잃기도
오그재 넘어 대추의 고장 보은 도착

"지나온 길, 자신을 돌아보는 과정"
오천리 뒤로 비조재… 대양리·구암리

박연수 <산악인>

백운리는 169가구에 358명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청산 중·고등학교가 자리 잡고 있는데, 옛날에는 보은 탄부 대양·마로 오천, 청산 만월에서 학교를 오는 주 이동 통로였다. 또 일평생 조국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유정 조동호 선생의 출생지기도 하다. 마을 앞 느티나무 아래에는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샘이 있는데 전에는 식수 및 빨래터로 이용해 왔다고 한다.

아침 일찍 고백이 고개까지 우리를 안내해 주던 이장과 총무가 왔다. 마을회관 까지 빌려주며 직접 안내까지 해 주니 감사할 뿐이다. 고백이 고개는 만월리와 백운리를 연결했던 주요 교통로다. 또 만월고개로도 불린다. 마을 옆 백운천을 따라 올라갔다. 집집마다 2~3개씩 자리 잡은 감나무는 이곳이 감의 고장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마을길 옆에 청산고택이 자리하고 있다. 청산고택은 헌종4년인 1842년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는 조선시대의 목조기술을 파악할 수 있는 귀한 자료로 쓰인다.

김수일 이장은 "옛날 판서가 살았던 집인데 해방 후 밀성 박씨 문중이 제실로 사용하기 위해 사들였다"고 말했다. 현재는 잠금장치가 있어서 들어가 볼 수 없다. 충청북도문화재자료 60호로 지정된 고택 앞에는 안내판이 서 있다.

길은 제법 넓게 형성돼 있다가 가파른 산길을 따라 올라갔다. 고백이 고개에 오르니 청산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고개를 넘는 사람들의 안녕을 위해 마련된 서낭당은 지금도 흔적을 간직하고 있었다.

특히 이 고개는 많은 애환이 서려있는 곳이다.

함께 오른 김 이장은 "고개가 너무 커 만월리에서는 열 살이 돼야 초등학교에 들어왔다. 같은 학년이라도 2~3살 더 많다. 또 중학교는 탄부 대양에서부터 고개를 세 개나 너머 청산중학교에 왔는데 대양에서 온 손위 처남을 만나 소개로 결혼 할 수 있었다"며 결혼 이야기를 살짝 공개했다. 길이 제법 넓게 형성돼 있는 이유를 물었다. 그는 "이곳에는 제법 큰 형석 광산이 있었고 만월에 흑연광산이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 자원을 일본으로 가져가기위해 길을 크게 만들었다. 우마차도 다니던 길이다"며 잔인한 역사를 이야기 했다.

청산장은 제법 큰 장이다. 특히 대추와 우시장으로 유명했다. 소몰이꾼은 소 팔려는 주위 사람들의 소를 모아 끌고 고백이 고개(만월고개)를 넘어 청산장에 들렸다가 의성, 상주까지 내려갔던 곳이다. 마을 이장, 총무와 헤어져 만월리로 내려섰다. 길은 세월의 흔적을 조금씩 남겨주었다. 축대를 쌓아 만든 모습에서 길의 규모와 주요 통로임을 알 수 있었다.

만월리는 남서쪽으로 길게 대성천을 중심으로 형성된 마을이다. 마을은 농사철이라 경운기와 주민들이 분주하다. 갑자기 사람이 많이 모인 것을 본 마을 노인이 곁에 다가왔다. 김중환(77)어르신이다. 췌장암 선고를 받고 7년째라 힘들다 하시면서도 마을 이야기를 해줬다. 김 노인은 "이 마을은 경주김씨와 전주최씨가 대성천을 이루고 있다. 예전에는 화전민이 있어 많을 때는 140호 됐는데 지금은 60가구 138명 뿐 이다. 옛날에는 무거운 것은 소에 싣고 만월재를 넘어 다녔다. 대성리로 이어지는 도로는 후에 흑연과 석회를 실어 나르기 위해 개울을 따라 만들어 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는 동네 어른들의 추억을 듣고 오그재로 향했다. 오그재는 청산면 만월리와 보은 마로면 오천리를 연결하던 고개이다. 길은 마을 어귀에 넓게 형성돼 있다가 없어졌다. 산소 때문에 새로 난 길을 따라가다 길을 잃었다. 할 수 없이 나무 사이를 뚫고 능선에 올라 오그재에 닿았다. 다시 내려가 길을 확인하니 서쪽의 지능을 따라 옛길이 넓게 형성돼 있다. 세월의 흔적을 간직하고도 여전히 형태를 유지하고 있으나 초입부가 덤불에 싸여 찾을 수가 없었다.

오그재를 넘어서며 보은으로 들어선다. 영동, 옥천을 지나 보은까지 사람의 흔적이 남아있는 길을 찾아가며 걸어왔다. 지나온 길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연방희 세무사는 "함께하며 서로가 살아온 과정을 배우는 과정"이라며 "남에게 물어보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과정"이라고 심오한 뜻을 전했다.

20세기 중국문학의 거장 루쉰은 '고향'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한 사람이 먼저 가고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길은 희망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다.

내려가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 특히 벌목을 해 쌓아놓은 나무와 덤불은 우리를 괴롭혔다. 덤불을 뚫고 내려오니 대추나무 과수원이 반겼다. 대추의 고장다웠다. 저수지를 지나 오천마을에 내려서니 지원조가 우리를 맞이한다.

오천리는 삼승산(574.4m)에서 내리는 천을 따라 보청천까지 길게 형성된 마을이다. 마을 앞을 흐르는 작은 내가 있어 오그내라 불렸다. '아늑하고 오목해 오그내라 했던가. 산자수명하고 인심 좋은 고장, 젊은이는 도시로 이전하고 노인들만 고향을 지키는 현실이란…' 마을 유래비를 뒤로하고 비조재로 향했다. 입구에는 '복사골 비조재'란 간판이 서 있었다. 비조재는 마로면 오천리와 탄부면 대양리 수피마을을 넘는 고개로 수피재라고도 불린다. 한 주민은 "고개를 넘어가려면 비지땀을 많이 흘려야 넘어갈 수 있어 이곳에서는 비지재라고도 불렀다"고 설명했다. 복숭아와 오미자, 그리고 대추농원을 지나니 전체가 복숭아 과수원이다. 탐스럽게 열린 복숭아가 우리 마음속을 풍요롭게 했다. 이곳을 지나가는데 한 대원의 입가에서는 "복숭아꽃 한들한들 피어 있는 길~ 향기로운 고향 길을 걸어갑니다~"라고 흥얼거린다. 과수원 좌측 골을 따라 비지땀에 온몸을 적시니 비조재에 다다른다. 이곳은 제법 서낭당 나무가 제법 운치를 자랑하며 흔적이 잘 보전돼 있다. 고개의 서쪽으로는 삼승산(574.4m)을 지나 금적산에서 북진해 한남금북정맥의 구룡산(549m)으로 이어졌다. 동쪽으로는 울미산(450.6m)을 지나 보청천에서 내린다. 고개를 넘어서니 제법 규모가 큰 뽕나무밭이 자리를 하고 앞에 펼쳐진 넓은 뜰은 보청천이 휘감아 돌아 지난다. 황금곳간쌀로 유명한 보은 탄부 평야지대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수피마을이라 불리는 대양리에는 '보청천이 범람하면 마을 들판이 물에 잠긴다. 사람들이 이를 피해 숲으로 들어와 마을을 형성했다'는 설과 '원래는 비조재 아래에 마을을 형성하고 있었는데 재 밑이라 도적이 많아 숲속으로 피신해 왔다고 해서 수피마을이라 불리었다'는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진다. 지금도 고개 아래에는 생활의 흔적이 많이 발굴돼 도적을 피해 뜰 가까이 숲으로 이사와 마을을 형성했다는 말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 마을에서는 수피재라 부르지 않았다. 아마 오그내 마을을 비롯한 아랫녘 사람들은 한양을 가기위해 주로 사용하던 고개였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지금 이 길은 동학교도들이 관군을 피해 보은 장안에 집결하기위해 넘었던 고개이기도 하다. 대양교를 넘어서니 너른 들판에 섬처럼 솟아오른 동산이 이채롭게 보인다. 대양리 노인회장은 "이곳에 동산이 다섯 개 있는데 천지개벽 할 때 큰 산에 막혀 그곳에서 멈췄다"고 설명했다. 노인회장의 설명을 듣고 확인해 보니 구암리 뜰에서 네 개뿐이 찾을 수 없었다. 넓은 농로길을 가로질러 구암리에 들어선다. 구암리는 거북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 귀바우 또는 구암(龜岩)이라 부르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시 마을 안에 아홉 개의 바위가 있어 구암리(九岩里)라 개칭했다. 1979년의 농지정리와 1980년대의 수해로 지금은 여섯개의 바위만 존재한다. 동네 중간에는 아직도 우물과 빨래터가 잘 보존돼 있으며 마을 유래비 옆으로 자연재해 피난 안내판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까지 오다보니 허기졌다. 충북 인터넷방송에서 오리고기를 준비했는데 꿀 맛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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