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가 당을 궁지로 몰아서야
대표가 당을 궁지로 몰아서야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2.07.30 21: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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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영동)

민주통합당의 한 의원은 최근 "이상득, 최시중, 정두언은 졸지에 사라지고 박지원만 보이는 형국이다"고 푸념했다. 검찰 소환에 거듭 불응해온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가 초래한 정치적 상황을 말한 것이다. 그의 말대로 민주당이 누리던 압도적 우위의 전세는 한순간에 역전됐다. 대통령 측근이 줄줄이 검찰에 불려가고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까지 구속되며 휘청대던 새누리당은 정두언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로 결정타를 맞고 그로기로 몰렸지만 일거에 전력을 회복하고 공세로 돌아섰다. 적장인 박 원내대표가 일등공신이라는 점이 아이러니다. 급기야 검찰이 30일 그에 대한 체포영장을 청구함으로써 '박지원만 보이는 정국'은 당분간 지속될 것 같다.

박 원내대표는 상식과 여론에 충실했어야 했다. 자신은 물론 조직까지도 궁지에 빠지는 상황이 오기 전에 말이다. 그가 검찰의 1차소환을 거부할 때만해도 여론은 그의 반박을 수긍하는 듯했다. 우선 '한푼이라도 받았다면 목포역에서 할복을 하겠다'는 반응이 워낙 결연했기 때문이다. 목숨을 걸고 결백을 주장하는데 믿지않을 도리가 있겠는가. 검찰의 소환 시기도 석연찮았다. 대선을 앞두고 정권과 여당이 벼랑으로 몰린 시점이다보니 야당의 '물타기'라는 반박이 먹혀들었다. 지난 대선자금도 수사 대상으로 언급되던 시기였다.

그러나 소환 거부는 한번으로 끝냈어야 했다. 두번째 소환 거부에서부터 여론은 고개를 갸웃거렸고 그가 세번째로 소환을 거부하자 오히려 검찰의 주장에 무게가 실리기 시작했다. 이어진 방탄국회 논란은 박 원내대표에 대한 불신을 증폭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해찬 민주통합당 대표는 "다음달 3일 회기가 끝나면 바로 다음날인 4일부터 '8월 국회'를 열겠다"고 했다. 회기 중에 국회의원을 체포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아야 한다. 지난번 정두언 의원 건이 부결됐듯이 재적 과반수가 찬성해야하는 체포동의안 처리는 쉽지않다. 이때문에 민주당은 회기를 시차없이 연장시켜 박 대표의 체포를 막으려한다는 비판을 받고있다. 다음달 4일은 회기중에도 국회가 열리지않는 주말이니 민주당으로서는 이런 의혹을 부인할 핑계거리도 찾기 어렵게 됐다.

박 원내대표는 검찰이 자신을 죽이기 위해 짜놓은 각본에 응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정말 결백하다면 악수(惡手)를 거듭하며 스스로 의혹을 쌓아갈 이유가 없다. 일반인이라면 무고한 사람을 죄인으로 만든 그 각본이 억울하고 궁금해서라도 검찰에 나가 따졌을 것이다.

박 원내대표는 30일 검찰이 체포영장을 발부하자 "담담한 심정으로 당과 함께 무엇이 당을 위하는 길인지 심사숙고 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당을 위한 그의 심사숙고는 좀더 일찌감치 이뤄졌어야 했다. 지금 당을 곤경으로 내몬 장본인이 그 자신이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박 원내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요구서가 국회에 넘어오면 다음달 2일 본회의에서 가결시킬 방침이라고 한다. 안봐도 비디오다. 처리를 둘러싸고 국회는 한바탕 난리를 치를 것이 뻔하다. 어렵사리 개원해서 동료의원 체포동의안 처리로 날을 새는 국회에 대한 국민의 혐오감은 더 깊어질 것이다. 새누리당도 그렇지만 민주당은 국회 개혁 방안으로 '불체포특권 포기'를 약속했던 정당이다. 불체포특권이 국회의원의 정치활동 자유와 독립성을 보장한다는 애초 취지보다 부정과 비리를 감싸는 장치로 악용된다는 여론 때문이다. 그런 정당이 자당 대표를 살리기 위해 체포동의안 저지에 나선다면 국민들이 어떻게 보겠는가. 여기서 더 나가 민주당이 방탄국회까지 강행한다면 참담한 결과를 면하기 어렵다. 그렇지않아도 민주당은 이번 대선에서 박근혜와 안철수에 밀려 제2당으로서 존재감을 잃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후보경선과 공약개발 등 당의 재건과 집권을 위한 과업에 당력을 집중해도 모자랄 판이다. 이런 마당에 국민과 등을 돌리고 대표 살리기에 올인한다면 정당으로서 인정을 받기조차 어렵게 된다.

늦었지만 당사자인 박 원내대표가 결단을 내려야 한다. 국회의 권위에 또다시 흠집을 낼 체포동의안 상정과 방탄국회 소집을 막을 사람은 현재로서는 그밖에 없다. 당의 대표로서 더 이상 책임을 미뤄서도 안되거니와 원로로서 국회의 위상을 실추시킨 점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당당하게 검찰 조사를 받고 만일 실수한 것이 있다면 값을 치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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