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부엉이 닭장 습격사건
수리부엉이 닭장 습격사건
  • 김성식 생태전문기자<프리랜서>
  • 승인 2012.07.30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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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식기자의 생태풍자
김성식 생태전문기자<프리랜서>

반가우면서도 안타까운 사건(?)이 일어났다.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인 수리부엉이가 괴산의 한 농가 닭장을 습격해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놨다. 환경 생태사적으로는 40~50년 전에나 있었을 법한 오랜만의 일이기에 한편으론 반갑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죄없는 피해농가가 생겼다는 점에서 안타깝기도 하다.

일이 처음 일어난 건 지난 24일 밤. 달래강변에 있는 괴산 청천의 한 농가 닭장에 이상한 일이 발생했다. 닭장 안에 있던 크고 작은 닭 30여마리 가운데 가장 큰 닭 1마리가 무엇엔가 공격 당해 머리가 잘리고 내장이 몽땅 파먹혔다. 중닭 1마리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튿날 아침 모이를 주기 위해 닭장에 들른 주인은 아연실색했다. 널브러진 닭털에 잔인하리만큼 파헤쳐진 닭몸뚱아리가 닭장 바닥에 뜬금없이 놓여있는데다 다른 닭들도 얼마나 놀랐는지 벼슬이 새파랬다. 중닭 1마리가 없어진 건 한참 지나서야 알았다. 참으로 희한한 일을 겪은 주인 K씨는 처음엔 삵이나 담비 같은 야생동물의 짓이거니 믿고 혹시 울타리에 구멍이 났나 점검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이틀째 되던 날 밤 주인 K씨는 더욱 기절초풍했다. 범인이 네발 달린 짐승이 아니고 날개 달린 새란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새도 보통 새가 아니었다. 덩치는 사람 만하고 펼친 날개는 3m는 족히 돼 보였다. 난생 처음 보는 새인데다 실제 사냥장면을 눈앞에서 보는 순간 온몸에 소름까지 돋았다. 당시 그 새는 이미 1마리를 잡아 어디론가 갖다놓고는 다시 돌아와 또 1마리를 붙잡아 내장을 파먹던 중이었다. 이틀사이 4마리의 닭을 희생시킨 새는 다름 아닌 수리부엉이였다. K씨 얘기를 종합하면 사냥에 이력이 붙은 수컷 어미 부엉이로 추정됐다.

현장이 궁금해 들러봤다. 닭장은 허술했다. 울타리는 망을 쳐 만들었지만 정작 필요한 지붕은 설치가 안 돼 있었다. "공중으로부터야 설마~"한 게 일을 초래한 것이다. 닭장 안은 심각했다. 졸지에 끔찍한 사냥터로 변했던 악몽이 채 가시지 않았는지 사흘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초긴장 상태였다.

전해오는 말에 닭이 몹시 놀라면 애간장이 다 녹아 얼마 살지 못한다고 했는데 몇몇 닭들은 실제 그럴 것처럼 상태가 좋아보이질 않았다. 서둘러 지붕을 설치하던 주인 K씨도 "부엉이 습격 이후 닭들이 모이를 잘 먹지 않고 쉽게 놀란다"며 2차 피해를 우려했다.

수리부엉이는 한반도 야생 생태계의 최고 사냥꾼으로서 먹이사슬의 조절자 역할을 한다. 주로 밤에 활동하기에 밤의 제왕이란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예전엔 마을 어귀나 뒷산 절벽에 앉아 특유의 울음소리를 내며 터줏대감 행세를 하던 친근한 새였다. 그러나 1960~70년대 전국적으로 진행된 쥐잡기 운동의 후유증으로 약물중독이란 2차 피해를 입으면서 개체수가 급격히 줄어들어 멸종위기에 놓인 불운의 새이기도 하다.

그런 새가 최근 서식환경이 좋아지고 꾸준한 보호운동의 결과로 개체수가 느는가 싶더니만 그에 비례해서 좋지 않은 일들이 자꾸만 생겨나고 있다. 번식기만 되면 어느 지역에서 아사직전의 수리부엉이가 발견됐느니 어디에선 로드킬 당한 부엉이가 발견됐느니 하는 일들이다. 그런 와중에 이번엔 인가 닭장 습격사건이 일어났다. 실로 오래간만이라 드러내놓고 반기자니 피해농민이 걸리고 그렇다고 덩달아 손가락질하자니 굶주림에 지친 그들 모습이 걸린다. 옛 사람들은 어떻게 대처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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