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숙인 대통령
고개 숙인 대통령
  • 오창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12.07.25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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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오창근 <칼럼니스트>

흔히들 권력은 나누어 가질 수 없다고 한다. 특히 절대 권력을 놓고는 설사 그것이 부자(父子)간이나 형제 사이일지라도 냉혹함에 예외를 두지 않는다. 골육상쟁(骨肉相爭)은 이를 두고 생겨난 말이다.

아우 최충수와 더불어 고려 무신정권을 연 최충헌은 당시 황제였던 명종을 폐위시키고 신종을 옹립했지만 한 달도 채 안돼 자신의 딸을 태자비로 삼으려는 아우 최충수와 갈등을 빚다 결국 무력 충돌로 이어지고 만다.

전투에서 지고 개경에서 파주로 패퇴한 최충수를 추적자를 보내 끝내 암살하고 만다. 이렇듯 큰 뜻을 모아 천하를 도모했으나 권력을 나눔에는 인정을 두지 않았다.

이러한 형제간의 권력다툼은 조선 초에 절정에 달한다.

이방원은 이복동생 방석을 죽이고 훗날 왕권에 도전하는 형 방간마저 귀양으로 쫓아내고 만다. 절대 권력에 도전하거나 잠재적 위협이 되는 자들과 권력 중심에서 관심을 받는 자들에 대한 감시와 견제는 그래서 더욱 혹독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혹시라도 모를 반란의 욕구를 잠재우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권력은 단 한 번도 인류에게 도덕을 요구한 적이 없다'라는 말처럼 절대 권력에 대한 집착은 일반인의 상식을 뛰어넘는다.

선조와 광해군, 인조와 소현세자 같은 경우는 부자간 임에도 '미래 권력'에 대해 두려움과 시기심으로 불행한 결과를 초래했다.

이처럼 과거의 절대 권력자들이 권력을 지키고 영위하려는 욕심으로 피바람과 사화(士禍)가 일어났다면, 지금 대통령의 권력은 그를 둘러싼 친인척의 비리를 단속하는 것이 급선무가 되었다.

역대 대통령 다수가 친인척 비리로 인해 대국민 사과를 하는 불명예를 안았다. 권력을 나눌 순 없지만, 권력 부스러기나마 기대하는 사람들이 이권을 위해 꼬이는 것을 막기는 싶지 않은 노릇이다.

친인척의 손발을 묶어 둘 수 없다면 이러한 비리가 없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은 백년하청(百年河淸)일 수밖에 없다.

과거 조선시대에는 종부시(宗簿寺)와 돈녕부(敦寧府)에서 황실이 친인척 관리를 맡았다고 한다.

왕실의 친인척은 관직에 나갈 수 없고 친소(親疎)에 따라 고려시대에는 봉작(封爵)이 주어졌으며 조선 시대에 들어서는 종반직과 의빈직 등이 주어졌고 직무없이 녹봉만 지급된 자리였다. 그러나 이에 속하지 않는 왕의 외손이나 왕비의 친족은 관직에 나아가는 장해를 받지 않았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절대 권력 주변의 친인척은 멀리할 수도 없고, 가까이할 수도 없는 특수한 관계인 것은 틀림이 없었다.

측근과 친인척비리가 정권마다 반복돼 국민 불신을 가중시켜 국정운영이 걸림돌이 되자 '대통령 측근과 친인척 비리수사처'를 상설하자는 의견과 '대통령 친인척 비리에 대해 상설특검을 실시하자'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를 보며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되든 측근과 친인척비리는 쉽게 통제할 수도 없고, 자신은 전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도 없음이 드러났다.

권력이 집중된 곳에는 이권이 있기 마련이고, 그 이권에 줄을 대기 위해 오매불망 기회를 엿보는 사람이 반드시 있다. 더욱이 미국이나 유럽처럼 개인주의와 합리주의가 만연하지 않고, 성씨만 같아도 항렬을 쫓아 족보를 찾는 등 학연, 지연, 혈연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우리 사회문화 속에서 해결책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냥 두면 똑같은 일이 되풀이 될 줄 뻔히 알면서 뾰족한 수가 없는 것이 친인척비리문제다.

여·야를 막론해 측근과 친인척비리에 대한 폐단을 공론화시켜 문제가 됐을 경우 엄벌에 처한 것도 좋지만, 사건의 위중함을 알아 스스로 처신을 가벼이 하지 않게 사회적 분위기를 일신하는 것도 방법이다. 불법적인 청탁을 통해 이득을 보려는 사람 또한 강력한 처벌이 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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