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자와 정치혐오증
추적자와 정치혐오증
  • 오창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12.07.18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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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오창근 칼럼니스트

대통령과 재벌 총수 중 선택하라면 대다수 국민은 어떤 선택을 할까?

종영을 맞은 '추적자'라는 드라마를 보면 대통령을 통제하고 심지어 길들이기까지 하는 재벌 총수의 모습이 나온다. 물론 픽션을 전제로 한 드라마라지만 재벌 총수가 대선에 개입하고 재판 결과까지 입맛대로 움직이는 것을 보면서 종종 언론에 보도된 우리나라 재벌 총수의 모습이 오버랩 되기도 한다.

'부자 되세요' 혹은 '대박 나세요'라는 말이 CF에 등장하는 천박성을 차지하더라도 부자가 되는 것이 삶의 중요한 목표가 되어버린 현실 속에서 돈으로 못할 것이 없다는 논리는 국민 뇌리 속에 깊이 박혀 있다.

드라마 속에서 극한 대립을 통해 감동을 배가하기 위한 장치로 순진무구한 딸의 죽음과 그 충격으로 목숨을 잃은 아내의 모습을 설정해 놓았다.

그리고 진실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주인공의 노력으로 위선적인 정치인의 가면이 벗겨지고 진실이 만천하에 드러나 정의가 승리한다는 원초적인 카타르시스를 시청자에게 선사한다.

재벌 총수와 정치인간의 금품수수, 후보자들끼리의 흑색선전과 거짓말의 난무 등은 드라마 속 내용이 아니라 이미 현실화된 문제이기도 하다.

상왕으로 군림하던 사람이 정권 말기에 검찰출두과정에서 넥타이를 잡히고 계란을 맞는 모습은 드라마의 개연성이 현실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말해 준다. 저축은행 돈을 받아 챙긴 국회의원과 청와대 직원들이 줄줄이 구속되는 상황은 정치가 가진 어두운 이면을 낱낱이 보여주고 있다.

문제는 드라마가 재미만 주는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정치 혐오증'을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정치는 뜬구름 잡는 거대한 담론의 장이 아니라 작게는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작은 실천에서부터 출발한다. 드라마처럼 위선적인 대권 주자를 단죄하기 위해 투표장을 찾는 유권자의 모습이 다소 황당하더라도 정치판을 바꾸고 사람을 바꾸는 대안은 투표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정치 혐오증'은 국회에서 법안처리를 놓고 당들이 극렬한 대립과 몸싸움이 벌어질 때 더욱 주목받는다. 옳고 그름, 문제의 원인과 책임을 파악하기보다 뭉뚱그려 '정치인은 다 그런 사람이다'라고 단정짓고 외면해 버리는 정치적 무관심이 한국 정치를 후진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 것은 아닐까 되돌아보아야 한다.

정치인은 국민을 위해 옳은 소리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국민 즉, 유권자가 듣기 좋아하는 말을 골라서 하는 사람이다. 표를 얻기 위해서는 해마다 적자가 날 것을 뻔히 알면서도 공항을 건설하겠다는 공약도 서슴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말을 판단하고 적합성을 살펴 제대로 된 사람을 뽑는 것이 정치의 시작이며 국민이 당연히 해야 할 의무이다.

윈스턴 처칠은 '전쟁보다 위험한 것이 정치'란 말로 정치판에서 어떤 누구도 만신창이가 될 수도 있는 위험한 곳임을 강조했고, 조지 오월은 '정치인의 연설은 거짓말에 진실의 악센트를 주기 위한 것이다'라는 말로 현란한 말로 국민을 현혹할 수밖에 없는 정치인의 숙명을 간파했다. 이렇듯 정치가 갖고 있는 속성은 표심에 따라 변화무쌍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정치에 관심을 둬야하는 이유는 인권과 자유, 평등과 배려 등의 사회적 가치가 정치라는 매개를 통해 진화하기 때문이다.

국민의 의식만큼 나아가는 것이 정치발전이다. 사회적 변동이 혁명을 낳고 변혁을 만들어내지만, 그것은 예외적인 현상이다. 더딘 걸음으로 역사의 수레바퀴는 다수가 원하는 세상, 현재보다는 조금은 더 공평하고 공정한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다. 정치인이 밉다고 외면할 것이 아니라 관심과 참여를 통해 다수 국민이 꿈꾸는 세상으로 다가설 수 있도록 정치의 고삐를 바짝 쥐고, 옳은 방향으로 몰아갈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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