쩨쩨한 단체장을 뽑자
쩨쩨한 단체장을 뽑자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2.07.16 22: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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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영동)

충청권 20개 지자체가 자체수입으로는 공무원 인건비도 충당하지 못할 정도로 재정이 빈약하다는 행정안전부 조사결과가 나왔다. 반이 넘는다. 전국적으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광역을 포함한 244개 지자체 중 절반인 123곳이 현재 거둬들이는 지방세로는 공무원 봉급조차 조달하지 못한다.

가난한 지자체의 재정 확충을 위해서는 국세의 지방세 전환 비율을 높이고 중앙정부가 재원을 배분할 때도 지자체의 재정 여건을 감안해 차등해야 한다는 등 보완책이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지방재정을 위태롭게 하는 요인으로 더욱 심각하게 지적되는 것이 지자체의 방만한 예산운용이다.

최근 함평군이 내년에 열기로 한 '세계나비·곤충 엑스포(나비엑스포)'를 포기한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함평군은 167억원을 들여 엑스포를 열기로 했다가 적자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자 없던 일로 했다.

함평군은 지난 2008년 국제적 규모로 나비엑스포를 열었다가 낭패를 봤다. 군은 당시 관람객 120만명을 모았다며 실패를 부인했지만 감사원 조사에서는 다른 결론이 나왔다. 549억원을 들인 이 엑스포의 실 수익은 137억2000만 원으로 무려 411억8000만원의 적자를 낸 것으로 조사됐다. 한해 예산이 2400억원 남짓인 함평군은 잘못된 판단으로 엑스포를 감행했다가 한해 살림살이의 17%를 날린 셈이 됐다.

생활비의 80% 이상을 큰집에서 얻어다 쓰는 궁핍한 작은집이 나아갈 길은 자명하다. 한푼도 헛되이 낭비되지 않도록 지갑을 단단하게 챙기는 영악한 살림꾼이 돼야 한다. 우리 지자체의 문제는 생활비의 쓰임새와 배분에 대한 전권을 가장이 독단으로 행사한다는 점이다. 가장이 이 돈으로 사업을 벌여 가족들의 복지에 기여한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다. 그러나 순박한 지자체가 진출해 수익을 챙길 정도로 대한민국 시장이 녹록하지 않다. 이미 많은 지자체들이 관급사업에 진출한 대기업의 봉이 되고 있잖은가.

민자사업에 실패해 빚까지 짊어진 지자체가 적지 않고 이에 대한 경보가 거듭되는데도 단체장들이 재정을 무시한채 각종 대형사업에 연연하는 것은 성과주의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살림이야 거덜이 나던말던 재선과 삼선을 위한 선거 홍보물에 큼직하게 들어갈 그럴싸한 실적 만들기에 올인하는 것이다. 만신창이가 된 민자사업의 대부분이 이런 단체장의 조급증이 기업의 올가미에 걸려든 케이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자 유치에 혈안이 된 지자체가 사후 적자보전 방식으로 민자를 끌어들였다가 뒷감당에 애를 먹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자체들이 앞장서 조성에 나서고 있는 산업단지나 물류단지 대부분이 이런 케이스다. 준공 1~2년후 미분양 용지 대부분을 떠맡는 조건으로 민자를 유치하고 있다. 이도 모자라 보증인으로 나서거나 민자법인에 직접 참여해 민자업체 대출까지 도와주는 지자체가 있으니 봉도 이런 봉이 없다.

이런 지자체들이 틈만 나면 잔치를 벌이는 것도 불가사의 중 하나다. 올해 전국에서 758개의 지역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그러나 산술적으로 수익을 내는 축제는 손으로 꼽을 정도다. 저마다 "돈은 들어갔지만 지역 이미지와 특산물을 전국에 알리는데 기여했으니 성공이다"라고 자위하지만 생활비를 큰집에서 타다 쓰는 옹색한 집에서 할 말은 아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 분탕질의 휴유증을 오롯이 후대들이 물려받게 된다는 점이다. 후임 단체장은 새로운 사업은 고사하고 전임자가 어지럽게 벌려놓은 사업의 설거지로 임기를 보내야 한다. 그나마 후임이 전임보다 나아야 설거지라도 가능해진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소리라도 나오면 이 지자체는 도산을 면하기 어렵다.

지방의회가 '무위도식'으로 일관하는 마당에서 남은 유일한 대안은 유권자다. 유권자들이 투표로 일그러진 현상을 바로잡아야 한다. 우선 개념은 없고 통만 큰 단체장은 다음 선거에서 퇴출해야 한다. 한푼에도 발발떠는 쩨쩨한 단체장이 훨씬 낫다. 전망도 없는 대형사업을 마구 추진하며 외지로 재원을 흘려보내는 단체장보다는 조그만 사업들을 벌이며 예산이 가급적 지역에 흡수되도록 궁리하는 소심한 단체장이 유익하다.

빚을 지고 있으면서도 선심쓰듯 수십억원을 들여 친분있는 단체에 연수원이나 체육시설을 지어주는 철없는 단체장은 피해야할 1순위다. 벌려놓은 사업들이 난항하고 실무자들은 골머리를 앓는데도 주야장창 해외 나들이로 소일하는 단체장은 최악이다. 우리 단체장은 어떤 유형인지 냉정하게 살피고 선거에서 응분의 결과를 안겨줘야 한다. 유권자들이야 말로 고삐풀린 예산놀음의 가장 큰 피해자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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