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에 문 활짝 열어준 천안시
대형마트에 문 활짝 열어준 천안시
  • 이재경 기자
  • 승인 2012.07.01 21: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데스크의 주장
이재경 부국장(천안)

같은 편인데도 한쪽은 죽을 힘을 다해 막으려 하고, 다른 한쪽은 문을 활짝 열어준 꼴이 됐다.

미국계 창고형 대형 할인마트 코스트코(Costco)에 땅을 판 천안시 얘기다. 시청 지역경제과에선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을 보호하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정작 기업지원과에선 대형 마트에 땅을 팔아버린 셈이 됐다. 사실 천안시가 땅을 판 건 아니니 억울하다고 얘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막을 알고 보면 천안시의 책임이 결코 적지않다. 문제의 땅을 판 법인이 천안시가 20%를 출자한 곳이기 때문이다.

얘기는 지난해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천안 제3산업단지 확장사업을 위해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 제3사이언스컴플렉스(주)의 출자사 중 KUP라는 회사가 있다.

그런데 가장 많은 지분(50%)을 갖고 있어서 그랬는지 이 회사가 땅의 매각을 주도했다. 팔아야 하는 땅은 3만5000여평방m 규모의 2필지. 원매자를 찾아나섰던 KUP는 국내 시장 확대에 안간힘을 쓰고 있던 코스트코와 눈이 맞아버렸다.

코스트코로서는 도시 성장세가 돋보이는 천안으로의 진출을 염원해왔을 터이고 가뜩이나 신규점 진출 때마다 부지 매입과정에서 애를 먹었던 터라 비싼 땅값(평당 350만원)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후 지난 4월 전격적으로 매매계약이 체결됐다.

지역 상인들이 화가 나는 것은 법인이 코스트코에 땅을 판다는 것을 알고도 천안시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점이다.

시는 올초까지 전혀 땅을 코스트코에 판다는 사실을 모르다가 지난 3월에 열린 법인 이사회에서 뒤늦게 이를 통보받았다.

그럼에도, 아무 생각이 없었다.코스트코가 입점하면 어떤 문제가 있고, 어떤 결과가 발생할지를 전혀 예측하지 않았다. 게다가 코스트코가 과연 3산단 지원시설부지에 들어올 업체로서 적합한지조차 고민해보지 않았다.

우선 코스트코 입점 후 파급 효과를 우습게 지나친 것 같다.

창고형 마트인 코스트코는 현재 전국에 7개 점포가 있다. 회원제로 운영되는데 기존 마트와는 전혀 다르다. 이 회사는 엄청난 자본력을 앞세워 미국에서 수입한 값싼 소비재를 무기로 국내 소매시장 상권을 무너뜨리고 있다. 아직 점포 수가 적긴 하지만 전국 매장 평균 매출이 연간 3000억원대이니 천안에 상륙할 경우 지역 상권에 미칠 파장은 실로 엄청나다. 이걸 간과하고 무개념하게 땅을 내줬다.

산단 지원시설부지에 들어올 유통업체로도 전혀 적합하지 않다. 산단 지원시설 내 공동 주택에 들어올 종사자 가족 수는 최대로 잡아도 1만6000여명 안팎. 유통을 담당할 '마켓'이 필요하다 하더라도 SSM(기업형 슈퍼마켓)정도의 소규모이면 족하다. 산단 종사자 가족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들어선 유통업체가 천안 전체 시장을 넘보게 되는 상황을 천안시가 사실상 묵인한 셈이다.

물론 코스트코가 다른 곳의 땅을 매입해 시장 개설 허가를 신청하더라도 천안시로선 막을 방법은 없다. 그러니 차라리 시내 상권과는 거리가 먼 산단 내 부지에 입점을 용인했다는 변명도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상황을 간과했고 문제가 뭔지 조차 몰랐다는 사실은 허탈감마저 들게 하고 있다.

7개나 되는 대형마트들이 소매 상권을 잠식해 동네 골목상권을 초토화하고 있는 현실을 외면하고, 산단 지원시설부지의 70%를 대형마트에 몽땅 팔아버린 것을 지역 상인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엎질러진 물이지만 뭔가 묘안은 없을까. 답답하기 짝이 없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