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보무사 <127>
궁보무사 <127>
  • 충청타임즈 기자
  • 승인 2006.07.14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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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두릉님을 몰래 도우러 온 사람입니다.
15.소용돌이 속에서

바로 그 여자!

아까 창고 안에서 조그만 사내와 더불어 곤욕을 함께 치렀던 바로 그 여자임이 분명하였기 때문이었다.

'아! 아!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이거 정말 큰일 났구나.'

두릉은 잔뜩 겁을 집어먹은 표정으로 덜덜 떨어가며 그 여인을 빤히 쳐다보았다.

지금 이렇게 밧줄과 쇠사슬로 묶여 있고 입마저 완전히 봉쇄를 당해 거의 무용지물이나 다를 바없는 두릉으로서는 누가 때리면 때리는 대로 꼬집으면 꼬집는 대로, 깨물면 깨물리는 대로 무조건 다 받아주어야만 하는 딱한 입장이기 때문이었다.

"쉬이잇! 두릉님. 조용하세요. 저는 두릉님을 몰래 도우러 온 사람이에요."

여자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을 하고나더니 두릉에게 바짝 다가와 그의 입안에 억지로 쑤셔 넣어진 헝겊뭉치를 손가락으로 모두 끄집어 내 주었다. 그리고는 어느 틈에 준비해 왔는지 물주전자 주둥이를 두릉의 입에 바짝 갖다댔다.

"어서 마시세요."

여인이 주위를 살펴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두릉은 벌컥벌컥 정신없이 물을 마셔댔다.

그로서는 이 세상에 태어난 이래 가장 시원하고도 달콤한 물을 마시는듯 했다.

"아니, 네가 왜 나에게 이런 친절을 베푸느냐"

모진 갈증을 풀고 나자 몸과 마음을 겨우 추스르게 된 두릉이 여인에게 물었다.

"제가 두릉님께 큰 신세를 졌기 때문이옵니다."

여인이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침착하게 대답했다.

"뭐, 뭐라고 아니, 그럼 내가 언제 너에게 은혜라도 베풀었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아까 창고 안에서 까딱했으면 저 더러운 놈에게 꼼짝없이 그대로 당할 뻔했던 저를 나리께서 구해주셨지 않습니까"

"아, 아니. 그, 그건."

"그때 저는 뜻하지 않게 나타난 나리 덕택으로 원치 않은 욕을 간신히 모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놈은 아주 비열하고, 더럽고 잔인하고 추악하기가 이를 데 없어요. 놈은 중죄인들을 다루고 있는 이 동굴 감방 안에서 마치 폭군(暴君)처럼 행세를 하고 있답니다. 놈은 사지가 결박당하여 옴싹달싹조차 하지 못하는 죄인들에게 별별 해괴한 짓거리를 행해가며 괴롭힘을 주고 있지요. 이를 참고 견디다 못한 죄수들은 어디에 마땅히 하소연할 곳도 없고해서, 결국 죄수의 아내들이나 딸들이 놈의 비위를 맞춰주고자 뇌물을 몰래 갖다 바치거나 자진해서 몸까지 주고 있는 실정이옵니다."

"아니, 그 그럼. 네 남편도 지금 이곳에 잡혀 들어와 있단 말이냐"

두릉이 깜짝 놀라 이렇게 물었다.

"그렇습니다. 팔결성 말단 병사로 있던 제 남편은 어느 날 자기 상급자와 무예 시합을 벌이던 중 본의 아니게 그만 이겨버렸지요. 상대가 그대로 엎어져서 까무라치는 바람에 도저히 져줄 수가 없는 입장이 되었다더군요. 그런데 그걸 큰 망신이라고 생각했던지 그 상급자는 사사건건 꼬투리를 잡아가며 제 남편을 괴롭히다가, 애매한 사건을 이유로 해서 남편을 죄인으로 몰아세웠고, 결국 남편은 지금 나리와 똑같이 밧줄과 쇠사슬로 꽁꽁 묶여진 채 저쪽 감방 안에 홀로 갇혀 지내고 있는 중죄인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저는 한동안 감방을 오가며 남편의 옥바라지를 해주고 있었는데 젊은 제 몸에 눈독을 들인 그 놈이 저를 여자 죄수들의 감방을 청소해주고 밥해 주는 일을 하도록 주선해 주었지요."

"하아! 이런, 그러고 보니 네가 바로 그 자의 아내로구나."

두릉은 그녀의 말에 갑자기 뭔가가 생각이 난 듯 고개를 옆으로 살래살래 흔들어대며 크게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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