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성의 신화속의 날씨 <27>
반기성의 신화속의 날씨 <27>
  • 충청타임즈 기자
  • 승인 2006.07.14 09: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화산과 맞서 싸워 이긴 '백장군'

옥장천 물 마시고 천하무적되어 악한 흑룡(黑龍) 물리친 '백장군'

'화산에는 신, 악령, 사악한 귀신, 그리고 죽은 자의 영혼이 살고 있다.' 많은 문화권에서는 화산 폭발이 화산 안에 살고 있는 영신(靈神)들의 장난 때문에 생긴다고 믿고 있다. 화산 신들은 변덕이 심하고, 사람을 괴롭히기를 좋아하며, 아무것도 아닌 것에 분노하여 사람들에게 불과 먼지와 용암을 내려친다는 것이다. 페루에서는 성질이 고약한 미스티 화산신이 화산을 만들어 많은 피해를 준다고 전해져온다. 미국 오리건의 인디언은 사악한 불의 신이 마자마산에서 살면서 사람들을 괴롭히자 새스타 산에 사는 착한 눈(雪)의 신이 악한 신과 싸움을 벌였다고 전한다. 길고도 처절한 싸움 끝에 악한 불의 신이 지면서 머리가 잘렸는데, 잘린 머리가 마자마산의 큰 분화구인 크레이터 호수라고 그들은 믿고 있다. 우리네에게도 화산은 악한 귀신들의 장난이라는 신화가 전해오고 있다. 바로 백두산의 흑룡과 백장군 설화이다.

우리나라에는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산이 백두산과 한라산이다.

두 산 다 민족의 영산이라고 불리는데 특히 백두산 천지(天地, 하늘 못)는 하늘과 연못이 맞닿아 있다고 해서 신비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아주 옛날 백두산 일대는 사람들이 살기에 너무나 좋은 곳이었다. 빼어난 경치에 온갖 짐승들이 사이좋게 살아가고 있었으며, 사람들도 서로 도우며 평화롭게 살았다. 오랫동안 계속되었던 평화가 어느 날 깨져버렸다. 백두산에 살고 있던 악한 흑룡(黑龍)이 사람들이 잘 사는 꼴이 보기 싫어 심술을 부린 것이다.

흑룡은 입에서 나온 시뻘건 불 칼을 휘둘러 백두산 일대의 물을 말려버렸다. 뜨거운 불기운과 함께 물이 없어지자 나무들은 죽어갔고, 동물들도 다 떠나가 버렸다. 백두산 근처에 살던 사람들은 힘을 합쳐 흑룡에 대항하였다.

그들은 백씨 성을 가진 힘센 총각을 장군으로 삼고서 물길을 찾았다. "야! 물이다." 천신만고 끝에 샘을 찾아내 환호의 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하늘이 시커매지면서 강풍이 몰아쳐 산벼랑을 무너뜨려 샘 줄기를 막는 것이었다.

몇 번의 노력이 실패로 돌아가자 사람들은 하나 둘 떠났다.

이젠 백장군 하나만 남았다. 그는 흑룡의 장난에 굴복하지도 포기하지도 않았다. 악한 신과 끝까지 싸워 인간의 터를 지키려는 그의 노력은 하늘을 움직였다. 하늘에 있던 봉왕은 그의 딸인 공주를 백장군에게 보낸 것이었다.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흑룡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청석봉 옥장천의 물을 석 달 열흘간 마시면 천하무적의 장수가 된다고 하니 이 방법을 써보기로 하시지요."

공주와 함께 백장군은 옥장천을 찾아 나섰다. 험한 산을 수도 없이 넘어 어느 깎아지른 벼랑 아래 이르니 절벽 밑에 옥 같은 물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장군님, 이곳에서 백 일간 물을 마시면서 힘을 기르세요. 저는 백일 뒤에 오겠습니다."

그날부터 백장군은 옥장천 물을 마시면서 무예를 연마했다. 구십 일이 지나자 집채만한 바윗돌을 번쩍 들어 던지고 수십 길 고목을 훌쩍 뛰어넘을 정도가 되었다. 천하에 두려울 것이 없어진 백장군은 백두산으로 돌아와 샘물을 파기 시작했다.

그의 힘이 얼마나 좋았던지 한 번 흙을 파서 던지면 작은 산봉우리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며칠이 지나자 백두산 꼭대기에 거대한 물구덩이가 만들어졌고, 물이 솟아오르는 것이었다.

이때다. 갑자기 땅속에서 불 칼이 튀어나와 백장군의 가슴을 찔렀다. 불의의 기습에 백장군은 채 피하지 못하고 피를 쏟으며 쓰러졌다.

백장군이 죽어가는 순간에 도착한 공주는 백장군의 몸을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사랑의 눈물이 위력을 발휘한 것일까. 죽어가던 백장군이 눈을 뜨면서 기력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공주는 옥장천 물을 떠다가 열흘 동안 지극정성으로 백장군을 보살폈다. 옥장천 물을 먹은 날이 합하여 백 일이 지나자 백장군은 더 기력이 강성해져 천하무적이 되었다.

백장군은 다시 괭이를 들고 샘을 파기 시작했다. 땅속에서 거대한 물줄기가 솟아올라오면서 백두산 천지를 만들었다. 이런 꼴을 그대로 보고 있을 흑룡이 아니었다. 흑룡은 검은 구름 위에서 불 칼을 손에 들고 백장군을 공격했다.

그러나 흑룡은 백장군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결국 불 칼마저 부러진 흑룡은 삼십육계 줄행낭을 놓았다. 승리한 백장군과 공주는 부부가 되어 천지 맑은 물 속에 수정궁을 짓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전해진다.

흑룡의 불 칼이 부러지면서 백두산 북쪽 벼랑바위에 부딪혀 만들어진 것이 백두산 물길이 되었다고 한다.

백두산 천지의 물이 맑은 것은 공주의 해맑은 마음을 닮아서이고, 칠색의 무지개가 자주 걸리는 것은 백장군 부부의 승리를 축하하는 것 때문이란다.

그러나 지금도 백두산에는 수시로 검은 구름과 흰 구름이 흘러오고 갑자기 번개가 치고 우박이 쏟아지는 등 날씨 변화가 무쌍하다. 이것은 분이 덜 풀린 흑룡의 장난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흑룡(黑龍)은 전형적인 화산 폭발을 뜻한다. 검은 구름은 화산먼지 구름을, 불 칼은 화산 폭발과 용암을, 번개와 우박은 강한 화산이 폭발할 때 발생하는 기상현상이다.

엄청난 자연재해의 상징인 화산에 굴하지 않고 맞서 싸우는 우리네 조상들의 꿋꿋한 모습을 보여주는 이 신화가 나는 자랑스럽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