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안의 적과 수호신…여주 고달사지 원조대사탑비의 용
내안의 적과 수호신…여주 고달사지 원조대사탑비의 용
  • 정재학 <문화유산 여행가>
  • 승인 2012.06.24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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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년 용을 말하다
정재학 <문화유산 여행가>

조선 문학의 4대가이자 효종의 장인이었던 장유(張維) 선생은 대학(大學)의 신독(愼獨) '홀로 있을 때 조심하라'에 다음과 같은 경계의 글인 잠(箴)을 지었다.

'그윽한 그 방/ 말 없는 그 공간/ 듣고 보는 이 없어도/ 귀신이 그대 살핀다./ 너의 게으른 몸 삼가고/ 사심 품지 말라./ 처음을 단속 못하면/ 하늘까지 넘친 물 시작이라/ 위로는 하늘 이고/ 아래로는 땅 밟는다./ 날 모른다고 말하고/ 그 누구를 기만할까. / 사람과 짐승의 갈림/ 행복과 불행의 분기점이라/ 집도 새는 어두운 구석진 곳/ 나는 그것을 스승 삼으리라.'

이 글을 읽고 가슴 한구석이 뜨끔했다. 매일매일 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고 세상에 대한 원망만 늘어만 갔는데 결국 등잔밑 어둠이었다니. 그리고 이 어둠이 제 스승이었다니.

내 마음속 스승을 찾아 여주 고달사지(高達寺址)를 찾았다. 고달사지는 지혜의 눈이라는 혜목산(慧目山) 자락에 있는데 삼면은 올망졸망한 산봉우리들로 감싸져 있고 앞면은 시원스럽게 트였다.

고려 광종 이후 역대 왕들의 보호로 큰 성장을 하게 되었는데 유난히 석조 문화재가 많이 남아 있다. 이것들은 모두 고달이라는 석공이 만들었다고 한다. 그는 가족들이 굶어죽는 줄도 모르고 온 힘을 다해 절을 짓고 훗날 도를 얻어 큰스님이 되는데 그 후부터 이 사찰이 고달사로 불렸다는 전설이 있다.

1990년부터 시작된 발굴 및 정비 사업으로 깔끔하게 정비되어 요즘은 관람하기가 수월하다. 이곳은 승탑 국보 1점을 비롯한 보물 4점 등이 있는데, 명실상부 석조 문화재 전문 야외 박물관이라 할 만하다.

이것 중 원종대사탑비에 눈길이 간다. 마치 무 자르듯이 고부조로 조각해낸 석공의 기술과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것 같은 귀부와 이수의 용들의 동세는 소름이 돋을 정도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머릿돌 중앙 전액 아래를 보면 여기에도 용(사진·문화재청)이 조각된 게 아닌가. 독특함은 물론이고 비문 위에서 제 마음을 관조하면서 노려보는 눈매가 예사롭지 않다.

적은 밖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 더 무섭고 흉측한 적은 바로 제 마음 안에 도사리고 있다. 제 마음의 어둠에 스승 삼고 원종대사 탑비의 수호신 용처럼 제 안을 항상 지켜볼 일이다.

1916년에 무너져 여덟 조각 나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는 비문에도 새겨져 있다. '이른바 도란 마음 밖에 있는 것이 아니며 부처님 또한 우리들 각자의 마음속에 내재한 것이므로, (중략) 이에 그 위대한 자취로 말미암아 드디어 즉심즉불의 이치를 개시하였으니, 그 광명은 마치 물 위에 나타난 연꽃 같고, 밝기는 별들 가운데 둥근 달과 같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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