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생과 기생
공생과 기생
  • 정규호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비엔날레부장>
  • 승인 2012.06.21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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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정규호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비엔날레부장>

겨우살이라는 식물이 있다. 제 뿌리를 땅속에 단단히 박고 사는 여느 식물들과는 달리 겨우살이는 참나무나 버드나무, 팽나무 등의 줄기에 기생한다.

겨우살이는 엄동설한에도 푸른빛을 잃지 않은 채 높은 나무위에서 자라며 창창하게 맑은 겨울 하늘빛과 잘 어울린다. 그런 겨우살이가 항암과 기타 건강에 뛰어난 효능이 있다고 알려지면서 마구잡이로 채취하는 인간의 욕심 탓에 요즘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개미와 진딧물은 공생관계다. 진딧물은 식물의 진액을 빨아 먹으며 생명을 유지하는데, 이 때문에 진딧물이 들끓으면 식물은 살아남기 어렵다. 진딧물의 천적인 무당벌레는 진딧물을 주식으로 삼고 있어 식물을 키우는 인간에게는 도움이 된다.

그렇다고 진딧물이 무당벌레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할까. 별다른 무기가 없는 진딧물이지만 나름대로 생존전략은 있다. 식물의 진액을 빨아먹는 진딧물은 개미를 이용해 천적의 위협에서 자신을 보호받는다.

이 과정에서 진딧물은 식물에게서 얻은 진액 가운데 자신에게 필요한 영양분만을 취한 뒤 꽁무니를 통해 당분을 배출시켜 개미를 끌어 들인다.

개미는 진딧물의 꽁무니를 더듬이로 툭툭 건드려 당분을 얻는 대신 진딧물을 공격하는 무당벌레는 쫓아내는 전사(戰士)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아직도 정식 개원을 못하고 있는 국회 중심의 정치판을 보면서 새삼 공생과 기생이라는 자연의 섭리를 돌아보게 된다.

정치권 파행의 단초는 어찌됐건 진보 진영에서 먼저 원인을 제공한 셈이다.

비례대표 자격으로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경선 부정이 저질러진 것이 표면적인 이유인데, 기성 정치인의 도덕불감증과 타락을 못마땅하게 여기며 맑고 신선한 젊은 정치를 기대하던 이들에게는 큰 실망이 아닐 수 없다.

하여 오염되고 혼탁한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스스로가 당당해지면서 반성과 함께 기꺼이 멍에를 벗어버리는 젊은 용기와 맑음을 순리로 여기는 분위기도 만만치 않은 듯하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그런 와중에 젊음의 순수를 희망했던 평범한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점입가경 점점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으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비록 비 보도를 전제로 한 말이나, 서슬 퍼런 보수언론이 버티고 있는 와중에 애국가를 부정하는 발언은 그 속뜻을 따져볼 필요조차 없이 우리를 짜증나게 한다.

국민들의 그런 짜증스러움에는 어떻게든 자기 자리를 고수하겠다는 젊은 진보의 고집스러움이 노회한 구시대 정치의 모습과 너무도 닮아 있다는 아쉬움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또 있다. 그로인해 빚어지는 보수 세력의 소위 색깔론에 무게를 실어주면서 진보와 보수의 간극을 점점 더 벌려가면서 대화와 타협, 그리고 한국정치에서는 그야말로 요원하기만 한 화해의 실종을 더욱 굳히는 도구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결국 대한민국 국회 안에서 보수와 극단의 진보가 적대적 공존의 틀을 공고히 하는 이상한 작용이 되고 있으니.

문제가 있다고 성토하면서도 과감하게 그 근본원인을 해결하려는 기미가 없이 적이 있음으로 인해 나 또는 우리의 선명성을 더욱 부각시킬 수 있다는 저의가 숨어 있는 것은 아닌지 자못 궁금할 따름이다.

그 저의에는 그런 선긋기를 다가올 대선 정국까지 이어가면서 독주체계가 흔들려서는 안된다는 각인을 찍으려 하는 것은 아닌지. 그러므로 대다수 국민의 짜증스러움과 우려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되는 원인의 숨통은 살려 놓은 채 적대적 동반자의 관계를 유지하겠다는 속셈은 충분히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쯤이면 무언가 다른 세상의 변화를 기대하던 평범한 국민의 젊은 진보에 대한 기대는 무너지면서 정치판에 대한 혐오는 더욱 커질 것이고, 그런 짜증스러움이 어쩌면 보수와 진보의 극단이 서로 짜고 치는 고스톱으로 우려할 만하다. 버리지 못하면 얻지도 못하는 법. 정치가 그 나물에 그 밥이 되는 식탁에는 희망의 배부름을 찾을 수 없다. 도대체 누가 누구에게 기생하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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