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카시즘' 카드 버릴 때 됐다
'매카시즘' 카드 버릴 때 됐다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2.06.17 21: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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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영동)

'매카시즘'이 경계받는 이유는 과정이 선동과 조작으로 점철됐기 때문이다. 1950년 2월 미 공화당 조셉 매카시 상원의원은 "국무성에서 암약하는 공산주의자 205명의 명단을 가지고 있다"고 폭로했다. 4년간 대륙 전역에 불어닥친 매카시 광풍의 서막이었다. 그러나 그는 공산주의자 리스트는커녕 자신의 발언을 받쳐줄 어떠한 근거도 갖고있지 않았다. 당시 그는 경력위조, 정적에 대한 명예훼손, 금품 수수, 음주추태 등의 혐의를 받아 궁지에 빠진 상태였다. 미국 사회 역시 매카시만큼 불안했다. 소련의 핵실험 성공, 중국의 공산화 등으로 공산주의에 대한 국민의 공포감이 고조된 시기였다.

정치적 위기 탈출을 위해 불안한 사회 정서를 이용한 그의 책략은 주효했다. 허풍에 불과했지만 확신에 찬 발언과 굳건한 안보관에 매료된 일부 국민은 그를 구국의 영웅으로 받들 정도였다. 누구도 그가 만든 위원회 소환을 거부하지 못했고, 이곳에서 낙인찍히면 구제받지 못했다. 수백명이 구금되고 1만명 이상이 빨갱이로 몰려 직장에서 해고됐다. 문화·연예계도 예외는 아니었다. 배우 찰리 채플린, 극작가 아서 밀러,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 등 당대를 대표하던 예술인들이 줄줄이 현장에서 축출됐다. 대부분 매카시의 일방적 억측과 의심을 뒤집어쓴 억울한 사람들이었다. 매카시가 기소한 인사들 가운데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사후 반세기가 넘었지만 조셉 매카시는 우리나라에서 주기적으로 부활한다. 좌우 대립과 남북 분단, 6.25전쟁 등으로 굴곡진 현대사가 낳은 신드롬일 것이다. 요즘 정치권에서 매카시즘이 다시 언급되고 있다. 통합진보당 이석기·김재연 의원과 민주통합당 임수경 의원이 종북논란에 휩싸이면서 야권의 반박논리로 등장한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은 더 이상 매카시즘의 활개를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종북논란과 매카시즘이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우선 매카시즘은 매카시라는 집권당 의원의 일방적 도발로 시작됐다. 반면 우리네 종복논란은 통진당과 민주당 의원들이 스스로 단초를 만들고 증폭시켜서 외부의 개입을 불러오는 자가발전의 과정을 거쳤다. 당사자들이 자초한 혐의가 짙다는 얘기다. 둘째 매카시즘은 조작된 정보, 허위의 정보를 토대로 진행됐다. 그러나 우리네 종북논쟁은 탈북자를 변절자로 부르고 애국가는 국가가 아니라고 주장한 구체적 혐의에 기초하고 있다. 세째 매카시즘은 정치에서 노조, 연예계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반을 사상검증의 대상으로 삼고 윽박질렀다. 그러나 종북논쟁의 대상은 스스로 의심을 키워왔을 뿐 아니라 유권자들의 합당한 의문에 답할 의무가 있는 몇몇 정치인일 뿐이다. 네째 매카시즘의 희생자들은 당시 사회를 지배한 '적색공포'에 짓눌려 거짓 자백을 했을뿐 아니라 동료들을 밀고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우리네 종북논란의 당사자들은 당당하다못해 뻔뻔한 모습으로 일관했고 이제는 선수까지 칠 정도로 능수능란해졌다.

종북논란의 중심에 선 이석기 의원은 애국가를 부인하기에 이르렀다. 그것도 자청한 언론 간담회에서 "애국가는 국가로 공인된 적이 없다"고 당당하게 밝혔다. 당의 전신인 민주노동당이 애국가 대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민중의례'를 진행했던 점을 감안할 때, 실언이 아니라 평소 소신을 밝혔다고 봐야한다. 종북논란에 정면으로 맞서고 국민들에겐 전면전을 선포한 셈이다. 애국가는 1948년 정부수립일 행사에서 공식 사용된 후 국내외 행사에서도 관행적으로 국가로 사용돼 왔다. 2010년에는 '국민의례규정'에서 대한민국 국가라는 법적 근거까지 부여 받았다. 일고의 여지도 없는 망언을 한 셈이다.

수재로 알려진 그가 할일이 없어서 한줌의 공감도 받지못할 헛소리를 기자들까지 불러다놓고 했을리 없다. 충격적 발언보다 걱정되는 것이 발언의 의도이다. 사상논쟁을 더욱 이슈화해 수세에 몰린 구당권파를 규합하고, 경선부정 국면을 털어낼 요량이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파당적 이해를 넘어서서 의원의 신분으로 파격과 충격적 행태를 일삼아 사회 갈등과 혼란을 조장하려는 의도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된다. 그의 이번 발언을 그냥 넘어가서는 안되는 이유이다. 특히 민주통합당은 이번에도 이 의원에게 실망감을 표했지만 '상식의 정치를 하라'는 잔소리에 그쳤다. 이젠 야당이 매카시즘 논리뿐 아니라 조소밖에 얻지못하는 점잖은 충고도 거둬들일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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