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탁동시와 탈바꿈…청도 대비사 대웅전 창방 단청
줄탁동시와 탈바꿈…청도 대비사 대웅전 창방 단청
  • 정재학 <문화유산 여행가>
  • 승인 2012.06.17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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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년 용을 말하다
정재학 <문화유산 여행가>

'나는 병아리 / 알 껍질 안의 병아리 / 다만 조그만 소리로 / 지줄거니는 것밖엔 몰라요 / 엄마가 와서 곧 / 도와주실 거예요 / 이제는 때가 되었단다 / 불러내주실 거예요.'는 나태주 시인의 '줄탁동시'라는 재미있는 시다.

이 말은 병아리가 껍질 안에서 쪼는 것을 줄이라 하고, 탁은 어미 닭이 밖에서 쪼는 것인데, 이것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껍질이 깨지고 부화가 가능하다는 것에서 비롯된 말이다.

모든 일이 다 그런 것 같다. 어느 일방이 아무리 좋은 생각과 노력을 한다고 하더라도 다른 일방이 받아주지 않으면 일이 성사되지 않기 때문이다.

등용문 고사를 보면 복숭아꽃이 필 무렵 황하의 잉어들이 거센 물살을 거슬러 상류로 올라가 용문에 이른다. 하지만 이 협곡은 물살이 세기로 유명해 올라가기가 쉽지 않은데, 천신의 도움으로 폭포를 뛰어오른 잉어는 우레와 번개가 쳐서 그 꼬리를 불태워 용이 된다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단청그림이 청도 대비사에 있다. 청도군은 소싸움으로만 유명한지 알았는데, 뜻밖에도 용 그림이 풍부한 명소인 줄은 미처 몰랐다.

청도 대비사는 동화사의 말사로 운문산 자락 깊숙이 내밀한 곳에 자리 잡고 있어서 고즈넉하고 아담한 사찰이다. 그리고 대웅전은 보물 제834호로 다포계 맞배지붕 건물인데, 외부에서만 보면 치장이랄 것이 별로 없고 그렇다고 시선을 끌 만한 특별한 것이 없어 그저 평범한 건물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이와 달리 내부에 들어서면 화려한 단청에 넋을 잃고 반전 장엄에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다. 특히 다양한 용 그림은 흥미를 끌 만하다. 불단 곳곳에 숨어 있거나 닫집 기둥을 휘감아 올라가는 역동적인 용 조각뿐 만 아니라 대들보의 용 단청 또한 훌륭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전면 안쪽 꽃살문 위 창방 부재에 그려진 단청은 놀라움의 극치라고 할 정도로 독특하다. 정면 어칸 창방에는 역동적인 용이 그려져 있는데, 이거야 그렇다 쳐도 양 좌우 협칸 창방에 그려진 그림은 정말 압권이다.

우협칸 창방에는 잉어 입을 뚫고 용이 여의주를 손에 쥐고 탈바꿈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고, 좌협칸 창방 그림(사진, 청도군청)은 머리는 물론이고 꼬리 부분에서도 벼락을 맞아 본격적으로 탈바꿈하는 게 아닌가. 어떻게 이런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단 말인가. 이 그림을 보고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한동안 멍해졌다.

매미는 여름 한 철 울기 위해 몇 년 동안 번데기 시절을 견딘다. 선진국 문턱에서 계속 정체된 우리의 허물은 언제쯤 벗고 화려한 비상을 하려나. 요즘 잉어들이 하나 둘 출사표를 던지고 용문에 모이는데, 어느 잉어의 줄이 국민의 탁으로 동시하여 탈바꿈할 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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