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에 남이란 없다
천하에 남이란 없다
  • 오창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12.06.13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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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오창근 <칼럼니스트>

강수량이 예전의 절반에 못 미친다고 시골 농부들 한숨짓지만, 도시에 사는 사람은 아침 출근길에 우산 드는 수고가 싫어 투덜대는 것이 세상인심이다.

내일이 아닌 것에 대해선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고, 관심조차 두지 않는다. 저녁시간 시리아에서 아이들을 포함한 100여명의 무고한 시민이 군인들에 의해 학살을 당해 모래 구덩이 속에 묻히는 장면을 보면서도 밥숟가락을 입에 넣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타인의 불행은 잠시 잠깐 안타까운 탄식을 불러올 뿐 내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보다는 자신의 손톱 밑에 낀 가시가 더 아프다고 느끼는 것이 세태다.

우린 내일이 아닌 것에서는 언제나 철저한 타인이 입장에서 세상을 본다. 자식을 잃어버린 부모가 생업을 포기하고 아이 얼굴이 들어간 전단을 돌리고 있어도 무심코 받아쥐고 쳐다보다 휴지통에 버리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는 전단을 아예 받지 않으려고 황급히 발길을 돌리는 사람도 있다.

이 또한 내일이 아니므로 사태의 심각성과 부모의 애끓는 마음에 관심이 없어 나타나는 행동이다. 타인의 고통을 함께하고 슬픔을 공감하기보다는 자신의 일상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이기심의 발로다.

얼마 전 선거 날 술좌석에서 한국 정치가 썩었다며 열변을 토하던 사람이 선거 당일 투표도 하지 않고 가족 데리고 놀러 가기에 정치인을 욕하기 전에 투표하는 것이 옳지 않느냐고 핀잔을 주었더니 그는 국가가 내게 해준 것이 무엇이 있느냐며 누가 돼도 그놈이 그놈이지 하며 돌아선다.

정치를 비판하고 힐난해도 투표는 그에게 자신의 일이 아니었다.

거듭된 학생의 투신자살로 학교폭력의 심각성이 수면에 올랐지만 우린 학생의 죽음이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우리 사회는 내 아이의 성적에만 관심을 가지고 좋은 대학에 진학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졸업과 동시에 취업이 어렵고, 힘들게 취업을 한다고 해도 비정규직으로 근무할 가능성이 높아도 대학생들은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이 또한 눈앞의 내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이 들어 세상을 보니 참 억울한 사람이 많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됐다.

직장에서 억울하게 내몰린 사람, 믿었던 사람에게 사기를 당해 분노에 떠는 사람, 한때는 나와는 상관이 없는 사람들로 알고 살았지만 해가 바뀔수록 그들 모습이 미래의 내 모습이 될 수 있고, 그들의 삶이 우리 사회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유교의 지나친 의례에 반발해 겸애설(兼愛說)을 주장한 묵자의 가르침 중에 천하무인(天下無人)이라는 말이 있다. '천하에 남은 없다'라는 말은 인터넷과 미디어의 발달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지구촌 구석에서 일어나는 일이 안방 시청자에게 전달되는 이 시대에 더 잘 들어맞는 말이 아닌가 싶다.

그리스의 경제위기에 우리 증시가 춤을 추고, 북한의 핵 도발에 세계가 관심을 두는 것은 세계는 이미 직·간접적으로 깊은 영향을 주고받는 유기적인 모습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천하에 남은 없다.

그러므로 내일 아닌 것이 없다. 평등공동체사회를 꿈꿨던 묵자의 이러한 사상은 환과고독(鰥寡孤獨)의 차별이 없는 대동(大同)사회를 꿈꿨던 공자의 사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인간애를 바탕에 깔고 있기 때문이다.

수인(囚人) 생활에서 서로 밀쳐내는 여름보다 체온을 느낄 수 있어 겨울나기가 수월하다고 말한 신영복 선생의 말처럼 사람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필요하다.

세상살이 각박하다고 말하기 이전에 세상 모든 이들이 나와 상관이 있고 우리가 노력한다면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면 지금보다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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