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자'의 백홍석 형사
'추적자'의 백홍석 형사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2.06.11 21: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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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영동)

뺑소니차에 딸을 잃은 한 형사가 조직폭력배 두목을 찾아가 마구 두드려 팬다. 딸을 치고 달아난 차를 찾는데 부하들을 동원해달라는 부탁을 거절해서다. 속수무책으로 얻어맞던 두목은 결국 두손을 든다. 황급히 부하들을 불러모아 사고지역 민가를 샅샅이 뒤져 사고 흔적이 남아있는 차량을 찾아오라고 명령한다. 한 방송사의 '추적자'라는 드라마 2회분에 나오는 장면이다. 경찰이 사적인 목적을 위해 상대의 약점을 잡아 위협하고, 주먹을 휘둘러 관철시켰으니 명백한 월권이요 비리이다. 그러나 조폭 두목을 완벽하게 제압하는 경찰의 모습, 그 자체로 속이 후련해지는 느낌도 들었다.

형사는 조폭 두목이 운영하는 사설도박장을 급습한 동료 경찰들에게 적발된다. 그는 경찰 신분을 밝혔지만 현장에서 그대로 연행돼 도박장과 유착한 혐의로 조사를 받는다. 혐의가 의심스럽다며 한솥밥 먹는 동료를 붙잡아다 거침없이 취조하는 이 대목 역시 인상적인 장면으로 다가왔다.

깡패가 경찰에 꼼짝도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법을 집행하는 경찰관의 범죄는 일반인의 범죄보다 엄격하게 다뤄져야 한다. 따라서 범죄현장에 있었던 경찰에 대한 조사는 너무도 당연하다. 두 장면 모두 이치로만 따지면 아주 당연한 모습이지만 현실에서는 익숙치않은 모습이다. 그래서 많은 시청자들은 이 장면들에서 극의 리얼리티가 떨어진다는 결론을 내린다. 경찰에 대한 믿음이 깊지않다는 반증이다.

국민들은 인천시의 한 장례식장에서 조폭들이 충돌해 칼부림까지 벌인 지난해 경찰의 날(10월 21일)을 기억한다. 당시 현장에는 사전 정보를 입수한 경찰관들이 대거 출동해 있었다. 그러나 경찰은 현장을 제압하지 못했고 멀찍이서 구경만 했다는 비난까지 받았다. CC-TV가 잡은 현장의 모습은 국민들에게 경찰과 조폭 중 도대체 누가 우위에 있느냐는 의문까지 들게했다. 흉기를 들고 파출소에 난입한 괴한과 격투중인 동료를 두고 달아나는 경찰의 동영상이 공개돼 파문이 일기도 했다. 드라마 속 거침없는 형사와는 다른 모습들이었다.

경찰이 현장에서 바로 동료를 연행해 추궁하는 상황은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문제가 터질 때마다 경찰 내부에서 관행적으로 벌어지는 허위보고와 은폐는 이런 가능성을 부정한다. 경찰이 내부 시스템으로 비위를 자체 적발하고 조치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물러난 조현오 전 경찰청장은 "'양아치' 같은 사람들을 만나 술 사주고 밥 사주고 용돈 준다고 어울려 다니다보니 창피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양아치들의 '자폭'이나 '물귀신작전'으로 불거진 비리들이 태반이다. 경찰관 10여명을 뇌물수수 혐의로 줄줄이 쇠고랑을 채운 이른바 '룸살롱 황제'는 이런 양아치의 전형이다.

결국 드라마 속에서의 두 장면은 우리 경찰이 풀어야 할 숙제를 집약한다. 간단하다. 안팎으로 당당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범죄자나 범죄 집단은 단호하게 응징해 경찰의 권위를 세우고, 조직 내부에 대해서도 냉정하고 엄혹한 자세를 지향해 비리의 싹을 없애야 한다.

경찰청이 어제 부패척결 의지를 담은 쇄신안을 내놨다. 외부 반부패 전문가와 시민단체 인사 등을 중심으로 '시민감찰위원회'를 설치하고 각종 경찰 비위에 대한 감찰보고와 징계권고를 담당하게 할 계획이다. 감사관 산하에 개방형 '청렴지원담당관'을 두고 본청과 지방청에 경찰 내부 비리를 전담하는 '비리수사담당관'도 신설한다고 한다. 기구는 시스템을 구성하는 객체일 뿐이다. 주체는 시스템을 운용하는 사람이고 의지인데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은 보이지 않는다.

드라마 속의 형사는 유력한 대통령 후보 등 막강한 권력의 그물을 뚫고 딸을 치고 달아난 범인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그리곤 딸의 영정 앞에 용의자(공범)를 잡아 무릎 끓린다. 시청자들은 이런 의문을 가진다. 저 형사가 다른 사건에도 저런 가공할 의지를 발휘할 것인가. 드라마가 경찰에 던지는 또 하나의 메시지이다. 피해자를 내 가족처럼 여기고 범인을 추적하라는 것이다. 내 딸이 누군가에게 붙잡혀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경찰이 사건에 임했다면 수원의 비극도 없었을지 모른다. 기구 신·증설로 조직을 감시하기 보다는 경찰관들이 국민의 수호자라는 자긍심과 끝까지 사건과 승부하는 프로 근성을 갖게하는 방안이 더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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