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발 철학
닭발 철학
  • 문종극 기자
  • 승인 2012.06.03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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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문종극 편집국장

닭발요리도 중독성이 있는 것 같다. 아주 매운것과 중간정도, 아니면 거의 맵지 않은 것도 있지만 매콤한 맛에 요즘들어 동네 닭발집을 즐겨 찾는다. 며칠만에 또 찾았다.

밤 11시가 넘었는데도 문전성시다. 몇번을 두리번거리다가 겨우 2인석의 자리를 발견했다. 자리에 앉으면서 벌써 머리속에서는 곧 등장할 매콤한 닭발이 떠올려진다. 거기다가 알싸한 목넘김이 기대되는 소주 한잔의 맛도 머리속의 같은 도화지에 그려진다. 앞자리에 앉은 아들녀석도 코가 실룩실룩하는 것이 내 머리속의 그림과 같은 모양이다.

서빙(serving)하는 총각의 상차림이 속도를 내는 동안 주변을 돌아다본다. 가족이나 연인, 친구, 동료인듯한 사람들이 끼리끼리 테이블을 차지하고 뭔가를 떠들어댄다.

닭발의 양념이 손에 뭍지 않도록하기 위해 주인이 내놓은 비닐장갑을 낀 손이 연신 닭발을 낚아챈다. 비닐장갑을 오른손에 낀 사람도 있고 왼손에 낀 사람도 있다. 아마도 오른손에 낀 사람보다 왼손에 낀 사람이 술을 더 먹는 주당인 것으로 생각된다. 오른손은 술잔을 받기 위해 남겨놓은 것이라는 추측에서다.

그들을 훓어보는 사이 그들의 대화가 귀에 들어온다. 정치얘기를 하는 테이블, 집안얘기 하는 테이블, 한없이 상대를 바라보며 조잘대는 연인들의 테이블, 회사 얘기로 톤(tone)을 높이는 테이블 등 각양각색이다.

한쪽 테이블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이면 그 옆 테이블은 톤을 더 높인다. 그 톤들이 합쳐지면서 왁자지껄하다.

우리 테이블에도 드디어 상차림이 완성된다. 닭발 한접시와 식초에 담근 무, 그리고 소주 한병이 전부다.

아들의 잔에 소주를 따른다. 아들도 답례로 내 잔을 채운다. 마주보는 눈빛은 같다. 첫 잔을 빨리 비우고 닭발을 먹자는 것이다.

닭발을 먹기 위한 것인지, 소주를 마시기 위한 것인지 몰라도 순서는 그렇다. 각자 토실토실한 닭발을 먼저 비닐장갑 낀 손으로 집어들면서 우리의 대화도 시작된다.

주로 아들의 얘기를 들어주는 것이지만 결론은 내가 내야 한다. 이제 대학의 새내기인 아들의 얘기는 대부분 대학생활 적응에 대한 얘기다.

대학이 지금껏 다녔던 초·중·고교와 같을리는 없지만 상대적으로 규제의 정도가 덜한 대학생활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가 하는 문제다.

규제가 없는 것 같으면서도 있고, 시간이 많은 것 같으면서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입시공부할 때는 대학만 가면 모든게 해방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막상 와보니 그것도 아니라는 얘기도 한다.

"뭐라고!" 하면 아들은 목소리를 더 높여 말한다. 내가 답하면 아들은 또 "아빠! 뭐라고요"를 반복한다.

왁자지껄인 주변 테이블의 높아지는 데시빌에 우리의 톤도 높아지는 것이다.

그렇게 나눈 대화의 결론은 "네가 규제가 없는 것 같으면서도 있다. 시간이 많은 것 같은데도 없다라고 느끼는 것 자체가 너는 적응을 잘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해준다. "그렇게 느끼는 너는 학칙을 지킬려고 하는 학생이고 뭔가를 해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시간이 없다고 느끼는 것"이라고 칭찬성 결론을 내준다.

그러면서 취업문제의 심각성도 곁들인다. 물론 그렇다고 너무 취업걱정에 빠져 즐겨야될 캠퍼스생활을 소홀히 하지는 말라는 조언도 해 준다. 알겠다는 아들의 대답을 신호로 막잔을 부딪치며 두개 남은 닭발을 한개씩 뜯는다.

그때쯤이면 다른 테이블 사람들도 결론이 난다. 현 정권을 애기하던 사람들은 이제 레임덕으로 결론에 다다른다. 마주 앉았던 연인들은 어느새 옆에 붙어 앉았다. 집안얘기를 하던 테이블은 주말 스케줄을 맞추는 것으로 끝을 맺는 것 같다.

테이블 마다 결론에 이르는 대화 분위기는 화기애애하다. 분명 토론이고, 소통이다. 개원하기전부터 온나라를 들쑤셔놓은 19대 국회에 야심한 밤 닭발집의 소박한 민주주의가 전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닭발집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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