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타병 나온 위례성 '돌무덤'
환타병 나온 위례성 '돌무덤'
  • 조한필 기자
  • 승인 2012.05.30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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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조한필 부국장(천안·아산)

천안시 의뢰로 진행된 '천안 성거산 위례성 학술조사'보고서가 이달 초 나왔으나 널리 알리기는커녕, 책 배포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웬일일까? 천안시가 4년에 걸쳐 억대 용역비를 쏟아 부으며 심혈을 기울인 사업인데 쉬쉬하는 이유가 뭘까. 내세울 게 없어서다.

백제시조 온조왕이 천안 위례성에 내려와 첫 도읍지를 정했다는 사실을 입증하길 바랐는데 그 기대가 수포로 돌아갔다.

충남역사문화연구원에 의해 진행된 이 용역의 최종 결과는 "천안 위례성에서 백제 첫 도읍지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천안시로선 허탈하기 짝이 없고, 많은 돈을 받은 용역기관으로서도 면목없는 일이다.

이 같은 사실은 충남대 백제연구소가 2003년 천안 북면 주민들(위례문화제전위원회) 의뢰로 펴낸 '위례산성'에서 이미 밝힌 바 있다. 그런데도 천안시는 욕심을 냈다. 도비·시비를 끌어들여 2009년부터 3차에 걸쳐 연구 용역을 발주했다. 허나 나온 결과는 10년 전 그대로다.

천안시는 위례산성의 백제 첫 도읍지 입증에 목을 매고 있다. 2010년 발굴에선 통일신라 토기편도 있지만 대부분 고려 기와ㆍ토기편이 출토됐다. 백제시대로 시기를 올려 볼 수 있는 토기 몇 점 나왔을 뿐이다. 2011년 2차 발굴서도 백제시대 축성의 증거는 밝혀내진 못했다.

특히 향토사학자들이 주목했던 남쪽의 돌무지 무덤(추정)을 발굴했는데 "환타병 등 쓰레기가 일부 토기편과 함께 출토됐고 최하층으로 지하수가 솟아나는 것을 볼 때 적석묘 등 무덤은 아닌 걸로 판단된다"고 했다. 온조·비류의 어머니로 주몽을 도와 고구려를 세운 여성 호걸 소서노의 무덤으로 추정하던 일부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고고학적 조사 결과를 보건대 이 산성이 백제 국가형성기와 관련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졌다"는 '2003년 결론'이 재확인됐다.

인근 지역에서 구전되는 백제와 관련된 지명ㆍ설화와 민속도 조사됐다. 결과는 참담했다."향토사연구자들의 추정이 그 지역의 지명 유래화되는 경향" "백제부터 지속돼온 민속 행위는 찾기 어렵다""되레 백제 말기 의자왕과 관련된 것(전설)이 많다" 등 온조왕과 직접 연관지을만 한 것이 드물다는 얘기들이다.

시장 의지가 투영돼 의욕적으로 조사를 추진했으나 결과는 제로다. 굳이 이번 학술보고서 의미를 찾자면 기존 조사 내용들을 가지런히 모아 놓았다는 것이다.

산꼭대기(523m)에서 2000년 전 온조왕 흔적을 찾는 건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용역비를 따먹는 연구원들로선 천안시의 이런 무모함을 말릴 필요가 없다. 이래서 천안시가 외부용역기관만 살찌운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번 보고서는 말미에서 "위례산성 백제 초도설(初都說)의 소모적인 논란을 종식시키기 위해선 추가 발굴이 필요하다"면서도 "발굴로는 '13년간 도읍지'증거를 찾기 힘들어 무형유산조사가 병행돼야 한다"는 모순된 제안을 하고 있다.

또 천안시가 쉽사리 포기하지 않을 걸 알고 있다는 듯 위례산 아래 구릉지 추가 발굴을 꼬드기고 있다.

이젠 발굴을 하려면 뭔가 나올 게 확실한 '국보 사적지'홍경사ㆍ천흥사 절터나 해 보자. 재탕ㆍ삼탕 결과만 나올 위례성은 전국 규모의 학술대회를 열어보자. 천안 백제초도설에 '우호적인'학자를 초청하고, 또 이를 부정하는 학자들도 부르자. 정약용으로 인해 통설이 된 한강이북 위례성설도 직산설 만큼이나 근거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향토사학자 임명순씨의 정약용 비판이 참신하게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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