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물총새 부부의 운명
어느 물총새 부부의 운명
  • 김성식 기자
  • 승인 2012.05.28 21: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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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식기자의 생태풍자
김성식 생태전문기자<프리랜서>

봄이 성급한 여름 기세에 눌려 서둘러 추락하고 있다. 계절이 오가는 길목의 달천변에서 낯익은 두 마리 새가 사랑을 나누고 있다. 깃털이 유난히 고운 물총새 부부다. 그런데 한 마리는 가만히 앉아 있고 다른 한 마리만 부지런을 떨고 있다. 가만히 앉아 있는 쪽은 암컷이고 부지런 떠는 쪽은 수컷이다.

수컷의 행동을 지켜봤다. 물가 바로 옆 바위 위에 죽은 듯이 앉아 무언가 뚫어져라 바라보다가는 어느 한 순간 물로 뛰어들어 물고기를 낚아챈 다음 암컷에게 다가가 건네주는 행동을 반복했다. 그리고는 암컷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아양 떨다가 이내 암컷 등에 올라타 사랑을 나누고는 어디론가 날아갔다. 조류생태학에서 이른바 구애 급이(Courtship feeding)라 부르는 짝짓기의 한 유형이다.

물총새의 몸빛은 참으로 곱다. 생김새는 비록 가분수처럼 몸에 비해 머리가 크고 부리가 길어 균형미는 떨어지지만 깃털만큼은 유달리 고와 예부터 취조(翠鳥)라 불렀다. 비취처럼 고운 새란 뜻에서다.

물총새는 사냥의 귀재다. 어찌나 물고기를 잘 잡으면 '물고기 잡는 호랑이' 혹은 '물고기 잡는 늑대'란 뜻으로 어호(魚虎) 또는 어구(魚狗)라 불렀겠는가. 영어권에서 Kingfisher라 부르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주 먹이인 물고기를 사냥할 때는 앞에서 소개한 것처럼 물가 나뭇가지나 바위 위에 꼼짝 않고 앉아 있거나 2~3m 공중에서 정지비행하면서 사냥감을 탐색하다가 먹잇감을 발견하면 곧바로 강하해 낚아챈다. 그런 다음엔 나뭇가지나 바위에 먹잇감을 패대기쳐 죽인 뒤 통째로 삼키는 습성이 있다.

오랜만에 추억의 새 물총새를 만나니 갑자기 그들의 둥지도 궁금해졌다. 어릴적부터 몸에 밴 습성이 또 도진 것이다. 차에 싣고 다니는 촬영장비를 챙겨들고는 방금 전 물총새 부부가 날아간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아니나 다를까. 멀지 않은 곳에서 물총새 수컷을 만났다. 암컷은 알 낳으러 둥지굴로 들어가 있고 수컷은 굴 밖에서 망을 보고 있던 참이었다. 둥지굴은 어느 고추밭 가의 흙벼랑에 있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둥지를 튼 벼랑이 고작 1m 높이밖에 안 되는 밭둑 같은 곳이었다. 뜻밖이었다. 더욱 놀란 건 둥지굴의 위치였다. 바닥으로부터는 채 1m도 안 되는 야트막한 곳인데다 둥지 위의 흙 두께도 겨우 한 뼘 정도밖에 안 되는 허술한 곳이었다. 웬만한 비에도 빗물이 곧장 스며들 것 같은데다 천적인 뱀이 쉽게 침입할 수 있는 위험천만한 곳이었다.

기자는 물총새와 관련한 좋지 않은 추억을 갖고 있다. 초등생 시절이었다. 동네 어귀에 있는 물총새 둥지굴 안이 궁금해 어느날 작정하고는 한 팔 깊이나 되는 굴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가 생각지도 않은 뱀이 물컹하고 만져지는 바람에 사색이 된 적이 있다. 당시 어린 마음을 더욱 기절초풍시킨 것은 굴 안의 벽이었다. 온통 새똥과 진흙으로 칠해져 있어 급히 팔을 빼려해도 쉽게 빠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사기를 급히 빼면 잘 안 빠지는 이치다. 다행히 독사가 아니라 물리진 않았지만 팔뚝에 묻어나온 물총새 똥의 지독한 비린내는 지금도 뇌리에 생생하다.

아찔했던 추억으로 인해 물총새 둥지굴 안을 다시금 들여다 보지도 또 들여다 볼 생각도 없었지만, 오죽 장소가 없으면 저토록 위태로운 곳에 둥지를 틀었을까 하는 측은함에 마음이 영 편칠 않다. 부디 아무 탈 없이 새끼를 쳐 나가면 좋으련만… 여전히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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