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보무사 <124>
궁보무사 <12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7.11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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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완전히 뻗어버려야 성주님의 노여움을 피할 수 있네!"
12. 소용돌이 속에서

장수 외북은 두릉의 두 눈과 마주치자 잠시 멈칫하더니 그대로 달려들어 그의 귓불을 깨물어 뜯는 척하며 재빨리 나지막한 귓속말로 이렇게 말하였다.

"두릉! 남들이 보는 앞에서 제발 아프고 고통스러운 척 해주게나. 지금 내가 이러는 건 다 자네를 위해서일세. 오근장 성주님은 귀중한 자기 아래 그곳에 끔찍한 화상을 입자 너무 화가 나셔서 그 원인 제공을 한 두릉 자네를 잡아다가 자네의 아래 그것을 가위로 싹둑 짤라 회를 쳐먹거나 찜을 쪄먹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계시다네. 그러니 자네가 지금 당장 다치지 않으려면 나에게 죽도록 얻어맞아 완전히 뻗어버렸다고 해야만 할 것이네. 그래야 일단 성주님의 불같은 노여움을 조금이나마 피할 수 있지 않겠나 내일 날이 밝으면 성주님의 생각이 또 달라지시겠지. 그때까지만 부디 참고 견뎌주게나. 이건 창리가 전하는 말일세."

이렇게 말을 마치고난 장수 외북은 더욱더 모양새를 크게 잡아가지고 두릉을 마구 때렸다.

'아이쿠! 아이쿠! 으으윽!'

그의 본심을 알고 난 두릉은 남들이 보기에 정말로 아프고 무척 고통스러운 듯 이리저리 몸을 뒤틀어가며 엄살을 한참 떨다가 그대로 고개를 아래로 푹 떨구며 완전히 혼절을 해버린 척 하였다.

"얘들아! 이 못된 놈을 감방 안에 집어 쳐 넣어라."

성 수비대장 주중이 그제야 기가 살아나가지고 자기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곧이어 그의 부하들은 기절한 두릉을 질질 끌어가지고 성내 깊숙한 곳에 있는 동굴 감방 안에 집어넣었다.

'아! 설마하니 나 두릉이, 팔결성 장수 두릉이 요모양 요꼴로 비참하게 될 줄이야. 참으로 오늘밤은 잔인하고도 원망스러운 밤이로다. 세상에 남자가 여자의 말을 잘 듣다가 망하고, 여자의 말을 안 듣다가 망한다더니만, 지금 내 경우는 후자에 속하겠구나.'

어둡고 차가운 감방 바닥 위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진 두릉은 주위에 사람이 없음을 알고 이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천천히 상반신을 일으켜 세웠다.

아까 외북에게 얻어맞은 곳은 그런대로 견딜만했지만, 아직도 온몸에 눌어붙듯 꽁꽁 묶여져있는 밧줄과 무겁고 굵직한 쇠사슬은 그러잖아도 답답하고 우울한 그의 몸과 마음을 더욱더 처량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곰팡이가 썩는 듯 이상야릇하고도 퀴퀴한 냄새를 풍기고 있는 감방 안.

두꺼운 쇠막대기들이 사방으로 둘러쳐져있는 대여섯평 크기 정도의 이 어두운 감방 안에는 두릉 이외에 아무도 눈에 뜨이지 않았는데, 그래도 희미하게나마 앞을 분간해 볼 수 있는 것은 저쪽 외진 벽면에 비스듬히 걸쳐놓은 감시용 횃불과 감방 위 자그마한 창문을 통하여 간간이 새들어오는 가느다란 달빛 줄기 덕택이었다.

'그나저나 도대체 이게 어찌된 일인가. 그렇다면 내가 수고스럽게 애써 데려왔던 그 여자가 성주님을 해치고자 준비하고 온 자객이었단 말인가. 내 그런 줄도 모르고 옥성으로 가려던 여자를 억지로 빼앗다시피해서 데려왔었으니. 아! 아! 그나저나 이를 어쩐다 고약한 성깔을 지닌 오근장성주님께서 결코 나를 곱게 놔두지는 않을 것이니.'

두릉은 장차 자신과 가족 모두에게 불어닥칠는지도 모를 엄청난 불행을 대강 상상해 보고는 갑자기 몸서리치듯 꽁꽁 묶여진 자기 몸을 부르르 떨어댔다.

바로 이때, 어디선가 나지막한 목소리가 그의 두 귀에 또렷이 들려왔다.

"두릉님! 두릉님! 저 좀 보세요."

난데없는 소리에 깜짝 놀란 두릉은 고개를 돌려가며 방금 소리가 났던 곳을 찾아보았다.

"저 여기 있습니다요. 두릉님! 저를 모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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