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하천에선 이런 일이
요즘 하천에선 이런 일이
  • 김성식 기자
  • 승인 2012.05.22 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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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식기자의 생태풍자
김성식 생태전문기자
산골짜기에 이팝나무꽃이 흐드러지고 들판에서는 찔레꽃이 올망졸망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하면 하천에서는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정신없이 바빠지는 물고기가 있다. 쏘가리다. 쏘가리는 중부지역의 경우 대부분 이팝나무꽃과 찔레꽃이 필 무렵을 전후해 산란하기 때문에 이 시기가 되면 각 하천의 여울은 매일 밤마다 떠들썩해진다.

물 속에서는 팔뚝만한 쏘가리들이 서둘러 알을 낳으려고 여기서 후다닥 저기서 후다닥 소란 피우기 바쁘고 일년을 기다려 온 어부들은 때를 놓칠세라 눈에 불을 켠 채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난리법석을 떤다.

그러나 눈에 불을 켠다고 쏘가리들이 쉽게 잡힐 리 만무. 더욱이 얕은 여울에서 몸을 반쯤 드러낸 채 후다닥 거리며 산란행동하는 쏘가리에 정신 팔려 무턱대고 달려들었다간 십중팔구는 놓치기 십상.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쏘가리 돌무덤이었다.

우선 하천변에 사는 어부들은 늦은 봄 이팝나무나 찔레가 꽃 피우기를 기다렸다가 어느 정도 개화했다 싶으면 여울이 있는 하천바닥에 크고 작은 돌들을 모아 돌무덤을 만들기 바빴다. 쏘가리가 올라오는 길목에 산란장겸 은신처를 만들어 줌으로써 보다 손쉽게 쏘가리를 잡기 위한 일종의 함정이었다. 그런 다음 쏘가리가 산란을 시작하면 밤중에 돌무덤으로 다가가 그물을 씌워 포위하고는 돌무더기를 들쑤셔 돌 틈에 숨어있던 쏘가리들을 잡아냈다.

지금은 내수면어업법에 의해 각 지역별로 산란철엔 일체의 포획행위를 금하는 쏘가리 금어기(전라도 경상도 4월 20일~5월 30일충청도 강원도 경기도 5월 1일~6월 10일)가 정해져 있어 언감생심 꿈에서라도 할 수 없게 된 잊힌 어로방식이지만, 이팝나무꽃과 찔레꽃이 필 무렵이면 으레 떠오르는 강가 사람들의 아련한 추억이다.

그런데 문제는 법이 정한 금어기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여전히 산란철을 기다려 쏘가리를 싹쓸이하는 불법 배터리꾼들이 근절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일년에 단 한 번 있는 산란장을 졸지에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놓는 끔찍한 어로행위가 여전히 저질러지고 있는 것이다.

상황은 이렇다. 쏘가리 산란이 시작된 남한강 수계의 달천 지역(특히 괴산 청천, 청원 미원 지역)과 금강 수계의 보은·옥천·영동 지역에서는 요즘 야간을 틈타 여울에서 배터리질을 해대는 불법 어로행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확인한 바에 의하면 달천 상류의 어느 지역에서는 최근 며칠 동안 하루 저녁에 최대 수백 kg씩의 쏘가리가 산란 도중 전기를 맞고 잡혀 나갔다. 한 목격자는 "잡은 쏘가리를 비료 부대에 잔뜩 담아 짊어지고 다니는 무리까지 봤으니 전체적으로는 얼마나 많은 양이 잡혀 나갔겠냐"며 어이없어 했다.

게다가 봄가뭄까지 극심해 대부분의 하천들이 바닥을 드러낼 정도로 유수량이 적어 웬만한 여울은 단 몇 곳만 배터리질을 해도 쏘가리는 물론 다른 어종들까지 싹쓸이 당하기 십상이다. 유수량이 적은 만큼 산란장으로 쓰이는 여울 또한 줄어들어 피해가 더욱 큰 것이다.

배터리는 전기를 이용해 물고기를 잡는다는 점에서 생태계에 대한 파괴력과 위해력이 대단히 크다. 전기가 직접 물고기 몸에 닿을 경우 곧바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가 하면 설령 설 감전됐다 해도 난소와 정소에 악영향을 끼쳐 산란과 수정을 어렵게 만드는 등 심각한 후유증을 남긴다.

물고기의 산란은 하천 생태계를 유지하는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생명현상이다. 각 어종들에게는 대를 잇기 위한 대임(大任)이자 개체수를 늘리기 위한 본능이기도 하다. 그런 숭고한 현장을 인간 욕심에 의해 졸지에 아수라장으로 만들어야 하겠는가. 이팝나무꽃, 찔레꽃 흐드러지게 핀 이 좋은 시절에

김성식 생태전문기자<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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