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시 문화행정, FAST가 망친다
천안시 문화행정, FAST가 망친다
  • 조한필 기자
  • 승인 2012.05.16 22: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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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조한필 부국장(천안·아산)

"노래방 도우미식으로 저녁 식사하고 풀장에서 노는 쪽으로만 생각했다" 이렇게 성매매 혐의를 강력하게 부인하는 천안서북구문화원장이 천안지청으로부터 처벌 여부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 2월 문화원장에 당선되기 직전 성환읍체육회 11명과 필리핀 여행을 갔다가 현지 여성들과 집단으로 '2박3일 동행'한 게 문제가 됐다. 천안의 문화원 수장이 경찰에 불려가 "성관계를 가졌냐, 안 가졌냐"를 따지는 치욕적인 조사까지 받았다. 처벌이 어찌 되든 간에 천안 문화계가 얼굴을 못 들게 됐다. 성환문화원이 서북구문화원으로 이름을 바꾸자마자 벌어진 일이다.

시는 원장의 성추행 파문으로 천안문화원이 문을 닫자 기존 읍·면지역의 두 문화원(아우내문화원은 동남구문화원으로)을 천안의 두개 행정구(區)를 대표하는 것처럼 '승격'시켰다. 읍·면지역 주민들이 이사진 대부분을 차지하는 문화원으로 하여금 천안 도심까지 양분해 관할하는 것처럼'분식(粉飾) 포장'한 것이다.

전형적인 임기응변식 전시 행정이었다. 결코 깊은 문화적 안목에서 이뤄진 조치가 아니었다.

올해 초 설립된 천안문화재단도 처음부터 비(非)문화적으로 움직였다. 이사진 구성이 밀실에서 전광석화처럼 이뤄졌다. 시장이 이사장이 되면 향후 선거법상 사전선거운동과 관련해 문화재단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경계의 목소리가 무시됐다. 기금 마련에 이롭다는 명목으로 시장이 이사장에, 이사들은 '모금유인책'위주로 짰다. 그러면서 재단이 천안의 문화를 대표한다고 보이도록 이름을 바꿔놓은 읍·면 소재 두 문화원장을 포함시켰다. 외형적으론 뭔가 깔끔하게 이뤄지는 듯했다. 서북구문화원의 경우 퇴임을 앞뒀던 전 문화원장이 재단 이사가 된 게 다행스러울 뿐이다.

그리고 명예퇴직을 앞둔 천안부시장을 사무국장으로 앉힌 후 위상을 높인다며 하루아침에 본부장으로 승격시켰다. 문화재단을 무슨 건설사업본부쯤으로 생각한 모양이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공모해 뽑은 직후 직함을 올리는 바람에 '대(對)국민 사기극'을 펼쳤다는 말까지 나왔다.

천안의 역사를 다시 쓰는 '디지털 천안문화대전'도 졸속으로 추진됐다. 지난해 불쑥 천안시지(市誌)를 디지털 향토대전으로 편찬한다는 발표를 했다. 천안시지가 발간된 지 10여 년이 흘러 몇년 전부터 재발간이 추진되던 시점이었다. 2009년 시지 편찬을 위해 교수·전문가들로 역사문화위원회를 구성해 놓고 그들에게 의견 한 번 묻지 않고 시 독단으로 결정했다.

국비 3억원에 시비 3억원을 보태 진행하는 사업이니 밑질 게 없다는 계산이었다.

천안시의 모든 과거·현재를 담는 중차대한 일을 하면서 여타 사업처럼 국비만 끌어오면 만사 OK였다. 게다가 시지 편찬을 둘러싸고 지역 문화계가 갑론을박하는 꼴을 보기 싫었는데 외부기관에 맡기니 금상첨화였다.

결국 '내부 연구진이 소외됐다, 부적절한 집필자가 있다, 용역기관이 지역사정에 어둡다'등 문제점이 쏟아졌다.

천안시의 문화행정이 흔들리고 있다. 행정 당사자들이 지역 문화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탓이다. 문화는 건설·행정·복지와 달리 천안시 슬로건 '패스트(FAST)'가 쉽게 먹히지 않는 분야다. 긴 기간에 걸쳐 쌓여지는 인간의 정신적·물질적 소산(所産)을 다루면서 어떻게 매번 쾌도난마식 해결을 하려 하는가.

급속한 외형 성장은 이뤘지만 문화·예술이 너무 빈약해 헛헛증이 심한 요즘, 점점 규모가 커지는 천안 문화시스템을 좀더 세련되게 다룰 문화 행정가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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