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목련이 죽었다
결국 목련이 죽었다
  • 김성식 기자
  • 승인 2012.05.14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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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식기자의 생태풍자
김성식 생태전문기자<프리랜서>

결국 목련이 죽었다. 해마다 4월이면 흐드러지게 꽃망울을 터뜨리던 옆집 목련 하나가 올핸 단 한 송이의 꽃도 피우지 못한 채 말라죽고 말았다.

이 목련이 올봄에 꽃을 피우지 않은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미 지난해 초겨울 엉뚱하게도 꽃망울이 손가락 크기만큼 부풀어 올랐다가 도중에 멈춘 '슬픈 이변'이 있기 때문이다. 동물로 치자면 새끼를 낳던 도중 출산을 멈추고 새끼와 어미 모두가 죽은 불상사랑 흡사하다.

목련이 죽은 사정은 이러하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약 6개월 전인 지난해 12월 초, 동지를 코앞에 둔 초겨울임에도 괴산군 청천면 일대와 청원군 미원면 일대 등지에서는 각종 야생화와 과수, 정원수가 꽃을 피우거나 꽃망울을 잔뜩 부풀리는 이변이 속출한 가운데 앞의 노부부가 사는 집 마당가의 목련도 개화 직전의 상태에서 돌연 겨울을 맞았다. 원인은 당시 유례없던 이상고온 현상의 여파 때문. 10월에 이어 11월까지 이어진 기록적인 고온현상이 찾아왔던데다 일조시간도 봄철 개화기와 비슷한 시기라서 많은 식물들이 계절을 착각했던 것.

당시 기자는 르포를 통해 "이미 꽃을 피워 열매를 맺은 사과나무 등 과수는 물론 꽃 피우기가 상당부분 진행돼 꽃망울이 크게 부풀어 올랐던 식물들은 내년 봄 개화기 또는 결실기가 와도 꽃이 안 피고 열매도 맺지 않는 무화 무결실(無花 無結實) 상태가 예상되는 등 피해가 우려된다"고 보도한 바 있다.

식물의 꽃은 꽃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꽃 자체가 존재의 이유인 식물들도 수두룩하다. 열매를 맺는 식물들도 꽃을 피우는 과정 없이는 아예 결실을 기대할 수 없다. 그 만큼 꽃과 꽃 피우기 과정은 식물에 있어서 중요하다.

식물의 꽃 한 송이가 피기까지는 꽃눈을 만드는 화성 호르몬과 꽃눈을 성장시키는 생장 호르몬, 꽃을 피우는 개화 호르몬이 관여하고 있다. 간단한 생리현상이 아니라는 얘기다. 메커니즘이 복잡한 만큼 에너지 또한 많이 소요되는 중요한 생명현상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꽃 피우기 과정이 상당부분 진행된 상태에서 돌연 꽃 피우기가 중단된다면 그건 중대한 사태다. 이유 불문하고 그 식물에 있어서는 절체절명의 비상사태나 다름없다. 게다가 앞의 목련의 경우 갑자기 들이닥친 겨울날씨로 인해 한창 부풀어 오르던 꽃봉오리들이 순식간에 얼어붙었으니 그 여파가 더욱더 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꽃 피우기가 졸지에 중단된데 따른 후유증이 큰 데다 갑작스러운 추위로 아무런 월동준비 없이 겨울을 맞았으니 그 시련이 오죽 컸겠는가.

목련 하나 죽은 것을 가지고 웬 호들갑이냐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결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 가을 이후 이상고온에 따른 각종 식물들의 이변 사례를 줄곧 지켜봐 온 사람으로서 그 후유증이 얼마나 큰 가를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다. 아울러 갈수록 심각해지는 이상기온 현상과 변덕스러운 날씨 변화에 농사짓기가 가면 갈수록 두려워진다는 어느 과수농부의 근심어린 표정이 자꾸만 '죽은 목련'과 오버랩돼 떠오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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