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카네이션
아버지와 카네이션
  • 오창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12.05.09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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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오창근 <칼럼니스트>

지난 일요일 시골에 계신 아버지를 뵈러 갔다. 늘 그렇듯 마트에 들러 과일과 고기, 막걸리 몇 병을 사 들고 갔다. 현관문을 여는 소리에 몸을 일으키는 아버지를 만나면 아버지는 똑 같은 말씀을 하신다.

"바쁜 데 뭐 하러 와?" 그러면서 눈은 어린 손자 녀석을 찾고 있다. 나란히 서 큰절을 하고 나면 "그래, 별일 없었냐? (막내 손자를 안으며) 공부는 잘하고 있지?" (아들 두 녀석은) "예, 할아버지" 하고는 마당으로 나가 놀기 바쁘고, 아내는 장을 봐온 물건을 꺼내 반찬 준비에 여념이 없다.

일주일 드실 반찬을 만들어야 하니 부산하다. 난 텔레비전을 켠다. 수십 개 채널이 있지만, 리모컨 사용법을 모르는 아버지는 늘 KBS만 보신다. 작년에 아들 녀석들이 저희 좋아하는 방송을 보다가 깜빡 잊고 채널을 KBS에 맞춰놓고 가지 않아 결국 동네 사람 중 퇴임한 교감 선생을 찾아가 KBS 채널을 맞춰 달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는 내게 아버지는 "좀 있으면 전국노래자랑 할 때가 되었다"며 무언의 압력을 넣는다. "이따 틀어 드릴게요." 담배를 입에 문 아버지는 "청주 작은아버지 소식은 좀 아니" 저번 주에 말씀드렸다. 집안 족보를 새로 만드는 일 때문에 몇 번 통화했다고. 아버지의 시간은 정지돼 있다.

느릿한 일상, 변화가 없는 단조로움 그 자체다. 반찬 준비로 달그락 거리는 소리와 텔레비전 소리. "아버지, 일어나세요. 목욕하고 옷 갈아입으세요." "됐다. 목욕은 무슨, 씻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보일러를 켜고 옷을 벗기고 목에 수건을 두르고 머리를 감긴다. 한사코 목욕을 거부해 아버지의 머리 감기는 것으로 대신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4년째. 여든아홉의 아버지는 한사코 텅 빈 시골집에 계시길 고집한다. 그나마 겨울이 되면 형님댁에 머물다가 봄이 되면 다시 이곳을 찾으신다. 설날 찾아간 날 앉혀 놓고 시골집에 데려가 달라고 청해 난 한참을 달래야 했다.

"아버지. 겨울 지나면 꼭 모시로 올게요. 시골집은 추워서 안 돼요. 식사는 어떻게 하시려고 그래요 날 풀리면 꼭 모시로 올게요." 4년 동안 되풀이하는 일이다. 8남매를 두었지만, 아버지 곁을 지킬 사람이 없다. 아니 아버지 고집을 꺾을 사람이 없다. 결국, 타협점이 겨울 한 철은 형님댁에서 나고 나머지는 서로 날짜를 맞춰 일주일에 세 번 시골집을 방문해 보살펴 드리기로 했다.

엊그제 PC방에 가느라 학원을 빼먹는 막내 놈을 혼냈다. 버릇을 고치기 위해 모진 말도 했다. 눈물을 흘리며 제방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니 맘이 편치 않다. 아침에 일어나 방문을 여니 녀석이 편지를 주고 휑하니 돌아선다. 봉투 겉면에 종이로 만든 카네이션이 붙어있고, 제 잘못을 반성한다는 말과 이다음에 돈을 많이 벌면 우리 부부 세계여행을 시켜준다고 쓰여 있다. 웃고 말았다.

아버지와 아들 중간에 내가 있다. 웃음기 없는 중년의 아들과 편지 한 장에 화가 사그라지는 또 다른 내가 있다. 어버이날 갈 수가 없어 읍내 나가 점심 한 끼 대접한 것으로 어버이날을 대신했다는 미안함에 길가에 놓고 파는 카네이션 보기가 부끄러워 긴 하루를 보냈다.

눈을 감으니, 소달구지 뒤에 날 태우고 마을 고샅을 돌아가는 젊은 아버지의 탱탱한 종아리와 '이랴! 어저저!' 산비탈 쟁기질 소리가 쩡쩡하게 골짜기를 울린다. 새참에 주전자에 막걸리를 담아 논두렁길을 내닫는 막내 녀석 나이쯤 된 어린 나도 보인다.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얼마 전에 본 '은교'라는 영화의 대사처럼 참, 사는 것이 맹랑하다. 내 늙을 줄 모르고, 자식만 보는 아둔함에 밤새 뒤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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