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海馬)의 특별한 사랑법
해마(海馬)의 특별한 사랑법
  • 김성식 기자
  • 승인 2012.05.08 04: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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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식기자의 생태풍자
김성식 생태전문기자<프리랜서>

"나에게 알을 주시오. 내 몸속에서 대신 키우리다. 그러는 동안 당신은 다른 알들을 만드시오."

한 번 짝은 영원한 짝이라는 일부일처제의 섭리를 지켜가며 암컷 대신 수컷이 임신해 산고를 치르는 물고기가 있다. 실고깃과의 해마다. 한자로는 海馬, 영어로는 sea horse로 표기되듯 이 물고기는 포유동물인 말을 똑 빼닮았다.

두 눈은 각기 360도 회전할 수 있으며 입은 트럼펫처럼 길게 생겼다. 몸의 절반 이상이 꼬리일 정도로 꼬리가 길고 물고기로는 유일하게 목이 직각으로 꺾여 있다. 머리는 위로, 꼬리는 아래로 향한 채 직립 유영을 한다. 헤엄치는 속도가 매우 느려 30cm 거리를 움직이는데 1분 30초나 걸린다.

전 세계에 50여종(우리나라에는 왕관해마 등 6종)이 서식하는데 하나같이 상반신은 말 머리, 하반신은 물고기 몸을 가진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어 예부터 숱한 신화와 전설을 낳았다. 그 중 그리스 신화에서 바다의 신인 포세이돈이 타고 다녔다는 괴물 해마 히포캄푸스(Hippocampus)가 유명한데 이 히포캄푸스가 오늘날의 속명(屬名)으로 굳어졌다.

해마는 신비스러운 모습만큼이나 생태 또한 경이롭다. '물속의 늘보'라 불릴 정도로 헤엄치는 속도는 무척 느리면서도 먹이를 잡을 때는 6000분의 1초라는 놀라운 속도와 90% 이상의 성공률을 보이며 천적의 눈을 피하기 위해 자유자재로 몸 색깔을 바꾼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해마의 가장 큰 특징은 수컷이 새끼를 낳는다는 점이다.

수컷 해마는 아랫배에 커다란 보육낭을 가지고 있다. 이 보육낭은 내부가 스펀지처럼 되어 있으며 수정란을 부화하는데 필요한 혈관들로 가득 차 있다. 다시 말해 이 보육낭은 단순한 새끼주머니가 아니라 알을 수정시키고 보호하며 부화하는 자궁 역할을 한다.

해마의 짝짓기는 구애행동으로부터 시작된다. 수컷은 우선 보육낭을 부풀려 과시하면서 암컷에게 다가가 유혹한다. 그러면 알을 밴 암컷이 기다렸다는 듯이 달라붙어 나란히 구애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러길 수 시간. 그러다가 어느 한순간 암컷이 수컷 보육낭 안에 알을 낳으면 수컷이 잽싸게 정자를 방출해 수정시킨다.

수컷이 암컷 몸에 정자를 건네주는 게 아니라 되레 암컷이 수컷 몸에 알을 넣어 주면 수컷이 알아서 수정란을 만드는 것이다.

수정란은 보육낭 안에서 대략 3주 뒤면 부화하는데 한 배에 보통 50~200마리가 태어난다. 새끼가 태어날 때 해마 수컷은 짧게는 1시간, 길게는 하루 이상 몸을 비틀면서 산통을 겪는다.

수컷이 새끼를 낳으면 곧바로 제2, 제3의 구애행동이 이어져 산란-수정-부화-출산의 과정을 반복한다. 한 번에 새끼를 적게 낳는 대신 여러 번 새끼를 낳는 것이다.

이처럼 해마 수컷이 암컷을 대신해 새끼를 낳는 것은 가뜩이나 적게 낳는 새끼의 생존율을 높이고 번식 횟수를 늘리려는 특유의 전략으로 알려져 있다.

다른 물고기들은 한 배에 수십만 개의 알을 낳는데 비해 해마는 많아야 200마리밖에 낳지 않기 때문에 수컷이 직접 나서서 정성껏 새끼를 부화하는 것이다. 또한 수컷이 새끼를 부화하는 동안 암컷은 또다시 알을 성숙시키는 시간을 버는 것이다.

느림의 미학을 통해 암수간의 영원한 사랑을 지켜내면서 또 한편으론 종족보전이라는 대임을 위해 수컷은 암컷 대신 출산의 아픔을 감수하고, 암컷은 수컷의 사랑이 헛되지 않도록 텃세권을 지켜가며 알을 성숙시키는데 온 힘을 다하는 유별난 물고기 해마.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그리고 이 땅의 모든 아비들의 주가가 갈수록 곤두박질 치는 이 시대에 다시금 되돌아 볼 그들의 특별한 삶과 사랑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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