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 전상서
아버님 전상서
  • 허세강 <수필가>
  • 승인 2012.05.06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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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허세강 <수필가>

아버지!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불러도 대답없는 아버지를 이렇게 불러봅니다. 저는 오늘 당신이 걸어오신 지난 83년의 거룩한 노정을 반추하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당신은 유난히도 곡절이 많은 삶을 살아오셨습니다. 두 분 어머니를 먼저 보내야 하는 슬픔속에서도 자식을 위해 온갖 고생과 시련을 겪으시며 꿋꿋이 살아오신 우리들의 위대한 영웅이셨습니다.

아버지의 생활은 일과 가정 오직 그 것 뿐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인생은 근면과 성실 그리고 정직 그 자체였습니다. 아버지의 바람은 선조에 대한 정중한 예와 자식들의 우애 그리고 후손들의 번영이었습니다. 삼우제를 봉행하고 당신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아버지의 위대한 정신을 그 속에서 발견하였습니다. 허씨 가문의 표상이신 나의 아버지, 존경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못난 이 아들은 그제야 비로소 아버지의 바다보다 넓고 태산보다 높은 가르침을 받들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당신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마지막 길을 떠나면서도 끝내 왜 눈을 감지 않으셨는지 저는 잘 압니다. 자식들의 앞날에 대한 걱정 때문이란 것 가슴에 새기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형제들은 물론 성실하게 잘 살아가겠사오니 이젠 이승에서의 무거운 짐 모두 내려놓으시고 그만 편히 눈을 감으세요.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이 불효자는 지난달 고향 선산에 잠들어 계신 윗대 7위 6기의 유택을 천분하여 자연수목장으로 재봉안하였습니다. 아버지의 뜻에는 한참 벗어났지만 도도히 흐르는 시대 조류에 부응하고 후손들의 안위를 위해 그렇게 하였사오니 나무라지 마시고 못난 이 아들의 충정을 깊이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이젠 다시 못 뵈올 나의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집안의 액운마저 가져갔습니다. 당신의 사랑하는 큰 며느리는 오래전부터 원인을 알 수 없는 심한 다리 통증으로 고생을 많이 하였는데 아버지께서 모두 거두어가시어 아버지께서 제 곁을 떠난 그날 밤부터 그 지긋지긋한 아픔이 물로 씻은 듯 말끔히 없어져 너무 신기하고 감사합니다. 그리고 둘째도 얼마 전 하마터면 암으로 전이되어 큰일 날뻔 했는데 그 직전에 아버지께서 악성췌장염을 발견해 주셔서 성공적으로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20~30년은 더 살 수 있는 천수를 얻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께서 평생을 쌓아 오신 공덕이 이제 빛을 내고 있습니다. 저 하늘나라에서도 부디 지금처럼, 후손들을 굽어 살피시며 혜안으로 저희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여 주시길 간곡히 부탁 올립니다.

평생 일구신 당신의 모든 것을 다 자식에게 주고 가신 나의 아버지. 하지만 2년전 아버지께서는 내게 "얘야! 아무래도 아랫배가 딱딱한게 이상하고 입맛이 없어 전혀 밥을 못 먹겠다" 하셨지만 아들인 나는 건성으로 듣고 "나이 들면 다 그렇치"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겨, 마지막 가시는 길에 엄청난 고통을 안겨드리게 된 못난 아들, 나 자신. 아버지, 아버지, 나의 아버지, 하해같은 아버지의 뜻을 헤아리지 못한 몹쓸 자식을 용서하세요. 한없이 못난 이 아들은, 오늘 지난 불효를 반성하며 두 손 모아 아버지의 극락왕생을 신명님께 빌고 또 빌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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