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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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7.07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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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꽃, 정수리에서 터지다
정수리는 몸통의 끝,

정신의 바람을 불러들이는 숨구멍이다.

사막을 건너오는 데 오십 년이 걸렸다.

네 손길이 만지고 간 가시 끝마다 붉은 핏방울

그 힘으로 견딘 상처가 흰 꽃잎으로 핀다.

시간의 모래땅에서 펌프질로 끌어올린

내 오랜 그리움이 팝콘처럼 터진다.

지금 바람을 향해 열린 꽃잎들의 문

하루해가 가기 전 어둡게 닫힐 테지만, 오늘 밤

감각이 정신으로 바뀌는 통점(痛點)에서 꽃은 환히 핀다.

흰 꽃은 붉은 피보다 더 붉다.

선인장 흰 꽃은 정수리에서 터진다.

시집 '통점(痛點)에서 꽃이 핀다'(황금알)중에서

<김병기 시인의 감상노트>

모래가 물결을 이루는 사막에 가 보았는가. 바람이 저마다 갈퀴 같은 손으로 슬픔이나 아픔을 긁어서 산을 이루고 산을 허무는 그 곳에 서 있어 보았는가. 낙타가 지난 오아시스역에서 아무 것도 남기지 않고 떠나버린 고통스런 이별을 아는가. 여기 뜨거운 정수리에서 꽃이 핀다. 잎을 뾰족하게 말아서 가시가 된 신선의 손바닥(仙人掌)이다. 이차돈의 목에서는 그렇게 흰 꽃이 솟아 사태를 이루었다고 하는데, 선인장은 어떤 순교를 위하여 오십 년 삭은 피를 뿜어내는가. 아픈 종점인 통점에 이르러야 하얗게 손바닥을 내밀어 오체투지하는 저 꽃을 보라. 붉은 피보다 더 붉은 내 안의 흰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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