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과 일본
태안과 일본
  • 정규호 기자
  • 승인 2012.03.08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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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정규호 취재2팀장(부국장)

일본에는 오는 11일을 피눈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1년 전 일본 동북부를 강타한 강진과 쓰나미(지진해일)로 엄청난 대재앙을 당했고, 그 와중에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으니 일본인들에게는 3월 11일 그날이 말 그대로 통탄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오늘 아침 조간신문에 실린 두장의 사진을 보면서 많은 상념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강진과 쓰나미 직후와 현재의 모습을 비교한 사진은 한 때 미국을 위협할 정도로 경제대국을 자랑하던 일본을 떠올리면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복구된 모습이라고는 하나 벌써 1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음에도 별다른 차이를 발견하기 힘들 만큼 더딘 복구는 초라하기까지 하다. 이처럼 경제대국 일본의 복구가 더딘 것은 원전사고로 인한 접근의 어려움과 피폭 우려가 가장 크게 작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2007년 12월 대한민국 충남 태안군 앞바다에서 발생한 기름 유출사고 당시의 모습과 자꾸만 영상이 겹쳐지면서 여전히 일본을 이해하기 힘든 나라로 단정하게 된다.

당시 대한민국은 인의 장벽을 방불케 할 정도로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태안, 그 솔향기가 그윽했던 바닷가로 몰려들었다.

12월 칼바람과 당당히 맞서며 수건이 아니면 헌 옷가지라도 들고 나와 구석구석 기름의 흔적을 닦아내던 모습은 세계인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으며, 한국인의 저력으로 지구촌을 놀라게 했다.

'국격(國格)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며 보란 듯이 자원봉사에 나선 수많은 대한민국 백성의 손과 손은 재앙을 극복하는 세계적 이정표로도 전혀 손색이 없었다. 100만명이 넘는 자원봉사자의 물결이 기름때를 벗겨내는 장엄함은 왜 우리나라를 금수강산으로 부르게 됐는지를 실감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그런데 일본은 어떤가. 비록 원전사고가 있고, 또 방사능 오염 등의 추가 피해가 예상된다 해도, 다른 지방의 일본인들이 대대적으로 나서 피해복구를 위해 땀을 흘린다거나 이재민의 처참한 생활을 돕기 위한 봉사에 나섰다는 소식은 시원하게 들리지 않고 있다. 심지어 피해지역 자치단체 공무원이 방송에 나와 '이곳은 방사능 오염의 우려가 없으므로 많은 도움의 손길이 찾아왔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하는 모습도 연출되고 있으니.

그 당시 나는 이 난에 제발 목 놓아 울기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애틋한 바람을 일본인에게 한 적이 있다.

일본인들은 대체로 참을성이 뛰어나다고 한다. 그런 참을성은 그러나 고난을 견뎌내고 극복하는 과정에서 표출되는 슬기로움과는 다른 것 같다. 그저 남보다 튀지 않고,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며, 시키는 대로 복종하는 선에서의 생활에 익숙해진 것 아닌가 라는 의구심마저 생길 지경이다.

원전의 사고로 인한 위험성이 심각한 경고로 나타나고 있음에도 아직 일본에서는 그 폐해를 우려하는 집단행동이나 시위 등의 항의는 찾아보기 어렵다. 기껏해야 서명운동 등에 동참하는 일이 고작인데, 그마저도 자신이 드러나는 것을 지극히 꺼려한다. 혹자는 이런 일본인들의 행동양식을 투철한 국가관의 발로로 환치시킬 수도 있겠다. 물론 그릇된 것이든 제대로 된 것이든 정책을 입안하고 실행하는 시각에서 보면 타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연이 분노하고 환경이 치를 떠는 극단의 개발지상주의 앞에서, 그리고 온전한 상태로 후손에게 물려줘야 할 땅의 소중함을 알고 있다면 마땅히 저항의 행동을 아끼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복구도 급하고 절실하지만, '나만 아니면 돼'라는 공동체 의식의 실종에 지금 지구촌 사람들이 일본을 더 우려하고 있다. 도움을 호소하든지, 스스로 나서서 자국민을 돕는 떨쳐 일어섬이 일본인에게는 절실한 듯 하다.

젠장, 그런데 아름다운 제주 남쪽 바다 구럼비 해안에서는 오늘도 폭탄이 터져 억겁의 세월을 버텨 온 바위를 깨부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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