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반의 계절
배반의 계절
  • 오창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12.03.07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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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오창근 <칼럼니스트>

봄은 왔으나 그 따뜻함은 누구에게나 같게 느껴지지 않나 보다. 마음만큼은 북풍한설보다 매섭게 몰아치는 날카로움에 치를 떠는 이는 공천심사 결과에 당락이 오가는 총선 후보자들일 것이다. 당명을 바꾸고 개혁적이고 참신한 인물을 고르고 상대 당에서 거물급 인사가 물망에 오르면 참신한 인물을 전략적으로 공천해 김 빼기를 하는 등 4·11 총선에 사활을 건 정치권은 말 그대로 봄은 왔으나 봄 같지 않다는(春來不似春) 말이 이 시점에 정확한 표현이 아닐까 싶다.

공천 탈락자들은 저마다 억울함을 호소하며 탈당을 불사하고 아니면 무소속 출마를 통해 공천심사가 잘못되었음을 증명하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드러낸다. 금배지를 달기 위해 노심초사 보낸 시간을 생각하면 분통 터지고 억울하지 않은 인사가 없을 것이다. 공천심사기준을 아전인수(我田引水)식으로 해석하거나 납득할 수 없는 심사기준에 의한 희생양으로 탈락의 변을 늘어놓지만 과거에도 늘 있었던 행태다.

지난 총선에서는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한 이들이 친박(親朴)계의 학살이라며 공천에서 떨어진 사람끼리 당을 만드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던가. 이제는 칼자루를 쥔 친박(親朴)계가 친이(親李)계를 대거 공천에서 탈락시킴으로써 파장을 불러오고 있다.

새누리당이나 통합민주당이나 공천과정에 잡음이 그치지 않는 것은 전략공천이라는 기행적인 정치 관행이 아직도 우리 정치권에 만연한 까닭이다. 당차원에서 전략공천을 감행하면 그 지역구에서 오랫동안 민심을 살피며 표밭을 일군 예비후보자들은 경선참여의 기회조차 없어진다. 상향식 민주주의와 절차적 정당성조차 담보해내지 못하고 오로지 당선이라는 당의 이기심만 준동할 뿐이다.

통합민주당의 김부겸 의원은 사지(死地)라고 할 수 있는 대구 수성갑에 당당히 도전장을 냈다. 필패(必敗)할 수밖에 없는 곳에서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 자신을 논개처럼 내던졌다고 할 수 있으나 내면을 살펴보면 향후 정치적 행보를 위한 발판으로 삼았다는 의혹이 짙다.

그 지역의 시민단체나 진보정당이 척박한 토양에서 나름대로 지역여론을 환기하며 오랫동안 준비해온 정치적 성과를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적지라고 할 수 있는 전라도 광주 서구을에 출사표를 던진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도 뜻은 크고 깊으나 자생적으로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험하고 있는 그곳의 새누리당 당원에게는 반갑지 않은 소식일 수 있다.

요즘 정치를 보노라면 정치 초년생들이 기성정치판에 들어가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참신성과 개혁성보다는 중량감 있는 인물이 대중적 인지도를 무기로 지역적인 정세를 감안하지 않고 공천을 하는 전략공천은 민주주의 원리를 가장 민주적으로 실천해야 하는 선거에서 그 원리를 부정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되어 버리고 만다.

정치는 원래 그런 것이라는 냉소주의가 팽배할 수밖에 없는 원인을 선거 때만 되면 어김없이 보여준다. 지역에서 꾸준한 정당활동을 통해 자신의 입지를 다져온 인물보다는 정치는 잘 모르지만 대중적 이미지가 강한 인물을 선호하게 되고 그렇다 보면 지역에서 학연과 지연에 얽매인 토호세력이 늘 유리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공천이 끝나면 '살생부'라는 무시무시한 말이 떠돌고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사람끼리 뭉쳐 당을 만드는 일이 반복된다.

모든 사람이 만족할 수 있는 심사기준은 불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최소한 납득할 수 있는 공천기준은 있어야 한다. 민의를 잘 받들고 민생을 잘 해결할 수 있는 유능한 정치인이 아니라 단지 당선 가능성이 높은 인물이라는 잣대만 가지고 총선을 치르려고 하는 정치 행태는 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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