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양아치
진짜 양아치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2.03.05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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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영동)

하늘 건(乾), 통할 달(達). 영화 '넘버 3'에서 검사로 분한 최민식은 건달을 이렇게 해석했다. "하늘과 통할 정도는 돼야 건달인데, 요즘 깡패들 중에는 건달은 없고 양아치 투성이"라며 조직 행동대장 역을 맡은 한석규를 대놓고 비웃었다. "툭하면 연장질이나 해대고"하며 깡패들의 타락을 일갈하던 검사는 마치 건달의 진면목이라도 보여주려는 듯 조폭 행동대장과 맨주먹으로 맞장까지 뜬다.

영화에서 처럼 건달의 한자식 표기는 근거가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깡패와 동의어인 건달을 해탈의 경지에 비유하는 발상 자체가 무리이다. 힌두교와 불교 용어인 간다르바(Gandharva)가 어원이라는 설도 있지만 이 역시 근거가 희박하다. 간다르바는 반신반인(半身半人)으로 하늘에서 음악을 담당했던 정령이라고 한다. 지상에선 악기를 연주하며 걸식했다는 풀이도 있어 무위도식하는 건달과의 연관성을 잠시 찾을 수 있을 뿐이다. 이 보다는 국내에서 찾을 수 있는 뿌리가 더 설득력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왕이 타는 말과 수레, 마구 등을 다루던 사복시(司僕寺)라는 관청이 있었다. 이 곳에서 말을 관리하던 하인을 '거덜'이라고 불렀다. 꼴에 관청 밥을 먹는다고 꽤나 거들먹거렸던 모양인지, 건달이 이 직책에서 나왔다는 주장이 있다.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린다는 의미의 '건들거리다'에서 비롯됐다는 분석도 꽤 일리가 있다.

어쨌든 건달의 사전적 풀이나 어원은 아름답지 못하다. 그런데도 세간에서는 깡패나 양아치 등 용어와 차별화돼 마치 '의리의 사나이'쯤으로 미화된다. 90년대 초 고향서 알고지내던 한 선배가 주먹들 체육대회에 다녀와서 "부정선수들이 많아 창피했다"고 푸념해서 한바탕 웃었던 적이 있다. 그가 말한 부정선수는 건달로서는 함량 미달인 양아치들을 의미했다. 그의 건달로서의 무한한 자부심을 눈치채지 못하고 '양아치나 건달이나 다같은 깡패들 아니냐'고 한마디 했다가 무식한 놈으로 몰려 엄청 시달렸던 기억이 난다.

폭력계 대부로 통하는 김태촌이 병원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다고 한다. 그는 환갑이 지난 나이인데도 기업인을 협박한 혐의로 검찰 소환을 앞두고 있다. 병원에 입원하는 김씨의 초췌한 모습에서는 왕년을 주름잡았던 전설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검찰과 병마의 추적에 찌든 초라한 60대의 모습은 격세지감을 불러왔다.

그의 이름을 전국에 알린 것은 1976년 신민당 전당대회 난입사건과 1986년 인천 뉴송도호텔 사장 폭행 사건이다. 이철승 등 신민당 비주류의 사주를 받은 그는 전당대회 3일 전 부하들과 함께 당사로 난입해 김영삼 측에 폭력을 휘둘렀다. 이어 5·26 전당대회장에도 들이닥쳐 각목으로 주류를 행사장에서 몰아내고 비주류에 주도권을 안겨줬다. 덕분에 이철승은 총재 자리에 올랐지만 김씨는 중앙당 노동부 차장 직함을 받았을 뿐이다. 뉴송도호텔 사장 폭행사건은 검사의 사주를 받아 일으킨 것으로 알려졌다. 호텔 사장과 이권에 얽혀있던 당시 서울고검 부장검사의 사주를 받은 청부폭력사건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이 사건으로 검사는 옷만 벗었지만, 구속된 김씨는 징역 5년에 보호감호 10년을 받았다.

김씨는 인생의 절반인 34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그가 받은 법의 심판들은 온당했던 만큼 동정받을 여지는 없다. 솔직히 삶을 정리해야 할 말년까지도 치졸한 사건에 연루되고 구설에 오르는 그의 모습에서는 '세칭 건달'의 풍모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한 줌 연민의 정을 품게 되는 것은 그를 회유하고 옭아맸을 양아치 권력들 때문이다. 주먹을 정치판에 불러들여 반칙과 간계를 가르치고, 권력과의 거래를 가르치며 건달 수칙을 저버리게 한 것은 늘 썩은 엘리트들이었다. 그러다 시대가 바뀌어 희생양이 필요할 때 버려지는 것이 주먹의 운명이었다. 병상의 김씨는 행동책일 뿐이고 진짜 두목은 주먹세계 밖의 양아치들이었을 것이다. 국민들이 동계올림픽 유치에 힘을 모으는 동안 평창으로 달려가 땅 사재기에 바빴던 양아치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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