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약한 역사 벗고 탄탄한 이야기 입어야
빈약한 역사 벗고 탄탄한 이야기 입어야
  • 정규호 기자
  • 승인 2012.02.19 22: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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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삼겹살거리' 조성 … 향후 과제는
서민·어울림 등 스토리텔링 전략 바람직

안정적 공급위한 양돈단지 구축도 필요

삼겹살이 청주를 부른다. 아니 청주가 삼겹살을 부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 때,‘차부’라는 이름의 시외버스 터미널을 거쳐 고속터미널이 있으면서 청주에서 가장 유동인구가 많았던 서문시장 일대의 옛영화를 되살리기 위해 ‘청주삼겹살거리’조성이 추진되면서 상권 활성화의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청주삼겹살거리’는 국민먹거리가 되고 있는‘삼겹살’음식문화를 매개로 하는 문화산업화를 통해 청주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

충청타임즈는 ‘청주삼겹살거리’의 성공 가능성을 진단하는 기획특집을 마련했다. <편집자 주>

세종실록지리지 청주목에는 청주시의 주장과는 달리 삼겹살은 커녕 돼지고기와 관련된 기록조차 없다.

다만 이 책 충청도편에 말린 돼지고기를 공물로 바쳤다는 기록은 있으나, 이를 청주 삼겹살의 연원으로 삼기에는 근거가 빈약하다.

청주시는 최근 ‘청주삼겹살거리’의 스토리텔링 공모에 나섰다. 문화를 매개로 하는 상품성 추구와 이를 통한 산업적 기반 구축의 전제조건으로 풍성한 이야깃거리를 만들겠다는 발상은 타당성이 있다.

스토리텔링을 통해 ‘청주삼겹살거리’에 대한 문화원형적 가치를 확보하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는 이 공모전이 청주의 삼겹살 연원설에 대한 설득력을 만들 수 있다.

현재 청주시 상당구 서문시장 곳곳에는 리모델링이 한창이다. 불과 몇 년 전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를 통해 거리공예프로젝트를 통한 시장 살리기에 막대한 예산이 투입됐으나, 지금은 그 흔적조차 제대로 남아있지 않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시장과 상권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그저 문화예술의 겉옷만 입히면 된다는 발상은 이처럼 엉성하다.

다 죽어가던 청주 서문시장에 그나마 생명력을 불어 넣고 있는 것은 삼겹살이다. ‘청주삼겹살거리·지정이라는 특성화 전략은 연탄 혹은 숯불이 한가운데 놓인 둥그런 식탁에 둘러앉아 두툼한 돼지고기에 굵은 소금을 뿌려가며 하루의 힘든 노동과 시름을 달랬던 중년의 추억과 맞물려 있다.

삼겹살거리 지정 이후 비어 있던 시장 상점들이 삼겹살 전문 식당으로 몸을 바꾸면서 벌써 이런 식당이 11곳이나 생겼다. 뿐만 아니다. 당장 오는 25일 문을 열 예정으로 350석, 600㎥를 훌쩍 넘는 초대형 규모의 삼겹살집이 새롭게 단장되고 있다. 삼겹살 단일 메뉴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으로는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가 될 것으로 알려지면서 ‘청주삼겹살거리’에 대한 관심을 더욱 키워가고 있다.

◇ 청주= 삼겹살, 삼겹살=청주의 연원설

청주 삼겹살에 대한 중년의 추억은 삼겹살을 간장에 찍어 구워 먹었다는 데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특징은 파절이를 곁들여 먹었다는 것이다. 이를 ’시오야끼‘라는 이름으로 불렀다는 것인데, 근거가 불투명한 왜색문화의 잔재로, 이를 원형질로 삼기에는 한계가 있다. ‘간장’과 소금을 뜻하는 일본어 ‘시오’와 ‘굽다’는 의미가 담긴 ‘야끼’는 엄연히 차이가 있다.

이 때문에 ‘시오야끼’가 연원이 되는 것이라는 점은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 오히려 이보다 더 먼저 시작된 굵은 소금을 뿌려 돼지고기를 구워 먹었다는 점에 착안이 되어야 하며, 이를 통해 ‘청주 삼겹살’의 근원을 찾아 보통명사화하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다.

왜색문화의 잔재를 털어버리고 근대화와 산업화의 과정에서 서민들의 애환이 담긴 음식을 청주 특유의 삼겹살과 파절이라는 돼지고기와 채소가 함께 어우러지는 상차림으로 전략화할 필요가 있다. 굳이 ‘세종실록지리지’등 역사의 근거를 뒤적이며 희박한 연관성을 찾기 위해 애를 쓰기보다는 서민, 그리고 어울림의 음식으로 특화시켜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청주삼겹살을 보통명사로 만드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 다양한 삼겹살 메뉴화

이미 확실한 국민먹거리로 자리 잡은 삼겹살은 그 인기만큼이나 다양한 메뉴가 선보이고 있다. 고기를 숙성하는 과정에서 포도주에 재우거나 대나무통을 사용하고, 된장 등의 소스를 통해 맛의 차별화가 시도되고 있다. 청주지역에서도 고추장 양념으로 특화시킨 백로식당의 경우, 프랜차이즈에 성공하면서 고정적인 마니아를 확보하고 있으며, 운전기사를 주요 고객으로 겨냥한 우암동 봉용불고기의 경우 삼겹살 단 한 가지의 메뉴만으로도 성공하고 있다.

그뿐인가. 백로식당의 경우 고기를 구워 먹고 나서 그 불판에 밥을 볶아 먹는 감칠맛과 함께 볶는 과정에서의 현란한 숟가락 장단 등 퍼포먼스가 인기를 끌었으나 최근에는 자취를 감추고 있다.

따라서 청주삼겹살거리가 대표적인 문화 중심 먹거리 상품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다양한 삼겹살을 이 거리에서 함께 선보일 수 있는 특화전략이 필요하다. 삼겹살집이 밀집돼 있으나, 각 집마다 특성이 다른 삼겹살을 선보이면서 소비자의 선택 폭을 넓힐 수 있어야 하며, 맛과 함께 현란한 퍼포먼스를 살려 또 다른 재미를 제공해야 한다.

◇ 안정적이고 맛있는 고기 공급

국내 양돈 농가의 사육능력으로는 삼겹살을 충분히 공급할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때문에 수입 삼겹살이 식탁과 삼겹살 전문 음식점을 이미 상당부분 장악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웬만한 식도락가들은 다 안다.

삼겹살 마니아들이 선택하는 가장 큰 요인은 뭐니뭐니해도 고기맛이다. 청원군 가덕면과 문의면에 위치한 삼겹살집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것 역시 고기맛이 좋다는 소문이 확산됐기 때문이다.

수입고기만을 취급하는 음식점이 전국적인 프랜차이즈를 형성하면서 손님을 유혹하는 것은 충분한 공급과 싼 가격이라는 장점이 있다. 가격대비 만족도가 생각만큼 작지 않다는 반응은 이래서 나온다.

‘청주삼겹살거리’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좋은 고기맛은 필수조건이다. 그리고 반드시 ‘국산’이 전제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가까운 곳에 안정적인 가격과 물량, 그리고 질 좋은 고기가 ‘청주삼겹살거리’에 공급될 수 있는 생산 체계가 구축돼야 한다.

현재 청주시에서 사육되는 돼지는 8농가 905마리에 불과하다. ‘청주삼겹살거리’를 만들어 특화시키겠다는 발상에는 턱없이 부족한 물량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곳에 안정적이고 질 좋은 고기를 싼값에 공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청주삼겹살이 먹거리와 연계한 관광상품으로 크기 위해서는 청주 삼겹살만을 위한 양돈단지 육성을 통해 차별화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철저하게 민간 위주의 자발적인 노력을 중심으로 하면서 중앙 및 지방자치단체의 전폭적인 지원이 진행될 수 있도록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방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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