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풍경…산다는 것과 살아간다는 것 4
베트남 풍경…산다는 것과 살아간다는 것 4
  • 윤승범 <시인>
  • 승인 2012.01.05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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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범의 지구촌풍경
윤승범 <시인>

베트남 대표 음식인 쌀 종이를 만드는 아낙이 보인다. 찜통의 더위에 찜통을 놓고 물을 끓이면서 찜통보다 치열한 삶을 산다.

쌀가루로 죽을 끓인다. 밖의 열기와 불의 온도 그리고 솥에서 나오는 열기로 인해 불구덩이 앞에 앉은 것과 다름없다.

펄펄 끓는 그것을 둥근 채반 위에 곱게 편다. 얇게 펴진 그것은 열기 때문에 후딱 굳는다.

그것을 넓직한 판대기 위에 '탁'하고 내려친다. 둥그런 채반 모양의 쌀 종이가 만들어진다.

다시 곱게 들고서 양지쪽으로 나간다. 양지 위에 펼쳐 놓는다. 한나절이면 벌써 굳어 딱딱해진다. 그것을 네모지게 자른다. 아니면 처음부터 작고 둥글게 만들기도 한다. 그것을 물에 불리면 졸깃졸깃한 쌀 종이가 된다.

거기에 야채도 넣고 새우도 넣고 돼지고기도 넣고 해서 쌈을 싸 먹는다. 익히 알려진 베트남식 스프링 롤이다.

찍어 먹는 소스에 따라 맛이 따르고 나오는 음식에 따라 찍어 먹는 소스가 다르다.

어느 것은 역하고 어느 것은 달콤하다. 인생의 다른 이름이다. 때로는 달콤하고 때로는 고통스러운 것. 첫 키스의 달콤함처럼, 사랑하는 이의 향긋한 숨결처럼. 그러나 모든 인생은 죽음으로 치닫는다. 질주하는 속도로.

'늑맘'이라고 부르는 토종 젓갈이 있다.

바닷가 어부들이 - 물고기를 잡는 사람을 어부라 부르고 나무를 하는 사람을 나뭇꾼이라 부른다 - 생선을 잡는데 구워도 먹기 힘들고 삶아도 먹기 어려운 아주 작은 생선들도 잡힌다. 아주 작은 그것들을 모아 숙성시켜 젓갈을 만든다.

바닷가 마을에 가보면 늑맘을 발효시키는 항아리들이 즐비하다. 어느 뚜껑을 열어도 바다의 냄새보다도 더 독한 냄새가 올라온다.

그것을 바다 냄새라고 하다가는 욕먹는다. 그것이 모든 음식의 조미료로 쓰이고 양념으로 쓰인다.

한동안은 역겨워 입에 가까이하지 않았다. 세월이 지나면서 조금씩 그 냄새에 길들여지고 익숙해지다보면 중독이 된다. 알아서 찾고 먹고, 없으면 달라고 해서 먹는다.

역했던 그것에도 매력이 있다. 식당에 가서도 달라고 하고 집에서도 일부러 사다 놓고 먹는다. 나중에는 그리워진다.

인생이 그렇다. 불구덩이에 있으면 빠져나오고 싶다. 내가 있는 곳이 지겹다. 그래서 다른 곳으로 간다. 그러나 이제는 떠나온 그곳이 그립다. 지나간 것은 모두 그립다. 힘들었던 것도 나중에는 추억으로 남는다. 마치 이곳의 삶이 그랬던 것처럼.

그래, 이것이 삶이라 믿는다. 낯선 것이 익숙해지고 그리고 거기서 사랑을 느끼는 것. 그래서 못 보면 보고 싶고 안 보면 그리운 것.

그것을 일러 인생이라 부르고 싶다. 처음에는 내 것이 아닌 듯 하다가 어느덧 그 살결의 따스함이 없으면 서운하고 안타까운 것처럼 우리네 삶도 그런 식으로 다가왔다가 그것을 깨달았을 때 우리는 죽는다.

인생은 길지 않다. 길지 않은 그것을 치열하게 살아 내야 하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길이다. 산다는 것, 만만치 않지만 아름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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