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야 산다
버려야 산다
  • 박병찬 <칼럼니스트>
  • 승인 2012.01.05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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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찬의 세상읽기
박병찬 <칼럼니스트>

연말연시 지인들과 함께 1박 2일 코스로 경남 통영을 다녀왔다.

420여 년 전 임진왜란 당시의 처절했던 해전(海戰)의 심각성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무뎌져가는 삶의 가치기준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된 듯 싶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일행들과 차량에 합승 이동하면서, 숙박을 함께 하면서, 역사의 현장을 함께 탐방하면서 서로를 보다 더 깊게 알 수 있는 계기가 됐고, 불가능을 가능하게 했던 이순신 장군의 나라사랑하는 마음과 리더십, 특히 위기관리 능력을 엿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순신 장군은 문무를 겸비한 장수로 불확실한 미래를 볼 줄 아는 탁월한 지도자였다.

조정에서 위정자들이 왜군의 침입은 없을 거라며 당파싸움만 일삼고 있던 상황에서도, 주변에 일본인들의 활동이 줄어드는 것을 보고 왜침이 임박했음을 감지했다고 한다. 사소한 징후에서 불확실한 미래를 읽었다는 얘기다.

풍부한 경험과 지식, 전문성을 바탕으로 사심 없이 세상을 봤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세 번의 파직에도 불구하고 두 번씩이나 무등 병으로 백의종군했다. 요즘 지도층인사들은 감히 흉내 내기도 힘든 나라사랑의 표본이었다. 국가와 국민에 대한 진정한 충성심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영웅은 위기의 순간에 빛을 발한다. 이순신 장군은 1591년 전라좌수사로 부임과 동시에 전쟁준비에 몰입했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직전까지 밤낮없이 준비했다. 왜침을 예측했기 때문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조정에서는 아무런 지원도 없었다. 군량미, 병장기 및 탄약, 함선 등 전쟁준비를 스스로 준비했다. 작전지역 지형 및 전사연구, 실전 같은 교육훈련 강화로 싸우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는 강군을 육성했다. 23전 23승이라는 기적 같은 승리는 그냥 얻은 것이 아니었다. 왜군보다 절대적으로 빈약한 전투력으로 7년간 장기전을 치르면서 단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다.

1592년 7월 55척의 함선으로 왜선 73척을 한산도 앞바다로 유인하여 '학익진'으로 60여 척을 침몰시키는 대승을 거뒀다. 왜군은 더 이상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세계 해전사에 빛나는 한산도대첩이다.

명랑해전에서는 울둘목의 빠른 유속과 좁은 지형 등을 이용하여 13척의 판옥선으로 왜선 133여 척을 격파시키는 기적 같은 드라마를 만들었다.

필사즉생(必死卽生), 죽을 각오로 자신을 버리고 싸웠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살고자 한다면 버려야 한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본다.

2012년 새해, 안보·정치·경제 등 제 분야가 안팎으로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보고 있다. 가정, 기업, 각 기관·단체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비장한 각오와 대응이 필요한 때다. 지도층은 물론 국민 개개인은 각자의 위치에서 본분을 다하는 한 해가 돼야 할 것이다.

물론 주변 상황을 제대로 직시한 분명한 목표가 있어야 한다.

버려야 한다. 특히 사심(私心)을 말이다. 그래야 주변상황을 제대로 읽을 수 있고 목표도 정확하게 볼 수 있다.

이순신 장군에게 배울 필요가 있다. 420년 전 임진년 상황은 작금의 우리 현실보다 더욱 악 조건이었다. 그럼에도 장군은 극복했다. 버렸기 때문에 가능했다. 모두다 말이다.

필사즉생, 기억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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