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녘
황혼녘
  • 홍도화 <예일미용고등학교장>
  • 승인 2011.12.20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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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도화 원장의 미용칼럼
홍도화 <예일미용고등학교장>

곤한 겨울잠을 자는 나무가 너무 깊이 잠들어 얼어 버릴까 봐 걱정되는 바람이 노심초사 조바심하며 눈 서리 찬바람 동반하여 몹시도 나무를 흔들어 대는 겨울은 간다.

따듯한 햇볕과 더불어 곧 여름이 올 것이라는 약속을 믿으며 무겁게 끼어 입었던 겨울옷의 근심을 가벼운 마음으로 내려놓으며 바람과 발맞추어 춤을 춘다. 따듯한 바람 부는 봄이 오면 햇볕 받으며 연녹색 새순 자라 새잎 만들고 자란 새잎 힘차게 하늘 향해 뻗어 오르며 즐기면 어느 사이 초록 나무가 만들어진다.

초록 나무 품으로 이름 모를 새들 부지런히 날아들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악보 없이 부르는 노랫소리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룬다.

여름날 논물 속에 몸을 담그고 개골개골 불러대는 개구리들의 합창 소리도 기온의 변화에 기력이 소진되어간다.

그리고 또 겨울이 돌아오면 창 너머로 보이는 산의 모습은 어두운 진밤색으로 변하여 새날을 기다리며 침묵한다.

열두 장의 달력을 받아 벽에 건 일이 어제 같은데 이제 달랑 한 장 남은 달력, 그것도 겨우 10일도 남지 않은 날을 남겨 놓은 2011년 한 해가 저물어간다. 1년 52주의 반이라도 봉사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던 시간을 돌아보면 아쉬운 마음과 함께 보람 있었던 생각들을 돌아본다.

자연의 섭리가 그러하듯 사람의 생애 또한 활기 왕성했던 젊은 시절을 지나 기운이 소진되며 쇠퇴하는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

전화벨이 울렸다. "많이 바쁜 줄 알지만 어쩌겠니? 내가 이제는 기운이 없어서 혼자 목욕을 갈 수가 없구나! 시간 좀 내서 와 줄 수 없겠니?"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젊어서 혈기 왕성했을 때는 조금만 잘못해도 한 번을 그냥 지나가시는 일 없이 꼭 매를 드셨던 어머니, 성질이 나시면 어디서 배우셨는지 상대방의 인격은 생각지도 않고 세상에 있는 욕은 다 하시던 욕쟁이셨던 분, 지금은 서리 맞은 고춧잎처럼 축 처진 피부와 늘어지는 몸을 가누기도 어려운 처지가 되셨다.

"왜? 이런지 모르겠다. 기운이 하나도 없다"하시며 곧 흘러 떨어질 것 같은 눈물이 그렁그렁 고이는 눈을 바라보며 함께 울지 않으려 마음을 쓸어내렸다.

따듯한 물에 목욕을 시켜 드리니 물장구치며 좋아하는 어린 아기처럼 시원하다며 매우 좋아하신다. 늘 건강하셨기에 일도 잘 하셨고 그래서 팔의 굵기가 남자 팔보다 더 굵었던 어머니, 근육이 남달리 딴딴해서 그 팔로 뭐든 잘도 하시더니 어느 사이에 이렇게 되셨는지 인생의 황혼녘에 서 있는 어머니의 모습은 곧 내게 다가올 내 모습이니 참아보려 했던 내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단단하던 근육이 다 풀어져서 계란을 살짝 반숙으로 삶아 껍질은 벗겨 놓은 것처럼 말랑하다 못해 잡으면 흐트러져서 다 없어져 버릴 것 같은 순두부를 만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너무 부드러워서 닦을 수도 없고, 그래도 닦아보려면 표피층 살가죽이 쭈욱 쭈욱 밀려 올라가는 살을 보며 너무나 아픈 마음을 느낀다.

숨 가쁘게 달려온 인생길을 되돌아보며 가족을 위해 일생을 봉사하신 어머니의 사랑에 조금이라도 보답할 수 있는 따듯한 봄날을 기다려보며 휠체어에 태워서 제주도 여행 시켜 드릴 계획을 다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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