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준과 충북인 허문회
박태준과 충북인 허문회
  • 문종극 기자
  • 승인 2011.12.18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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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문종극 <편집국장>

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국내외 수많은 사람들의 애도 속에 영면했다. 그는 1970년 포항제철소 건설을 시작으로 25년 만에 한국을 세계 4위의 철강강국으로 키운 철강업계의 대부다. 그래서 그에게는 '철강왕'이라는 닉네임이 따라 붙는다. 그는 대한민국 근대화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임에 틀림이 없다. '산업의 쌀'로 불리는 철강의 자급시대를 열어 한국 경제부흥에 절대적인 기여를 했다는 점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타계한 허문회 서울대 명예교수도 그에 버금가는 인물이다. 고 박 명예회장이 '산업의 쌀'을 통해 한국의 경제발전을 견인한 '철강왕'이었다면 고 허 교수는 식량증산을 통해 국민의 기아를 해결한 '통일벼의 아버지'다. 두 분 모두 우리의 근대화 역사에 큰 별이었다.

50대 이상의 한국인, 특히 농촌에서 태어난 사람이면 '통일벼'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60년대까지만 해도 농촌은 해마다 춘궁기와 보릿고개에 시달렸다. 인구는 많고 농경지 면적은 좁았던 당시에는 가을에 수확한 쌀이 이듬해 설이 지나면 대부분의 농촌가정에서 바닥이 났다. 보리를 거둬들이려면 여름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던 농민들은 이른 봄 주린 배를 해결하기 위해 들로 산으로 나갔다. 나물이나 식물 뿌리를 찾기 위함이다. 춘궁기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이를 해결한 것이 '기적의 볍씨'로 통하는 '통일벼'였다.

'통일벼의 아버지'로 불리는 고 허문회 교수는 1960년대 후반 필리핀의 국제미작연구소(IRRI)가 개발한 인디카 쌀의 다수확 신품종(IR 계통)을 접한다. 농업과학자들이 참여한 팀을 꾸려 신품종 개발에 나선 그는 1971년 IR 계통 벼와 자포니카 계통 벼를 교잡한 다수확 신품종 '통일벼' 개발에 성공한다.

일반 벼 품종보다 생산량이 40% 정도나 많았던 통일벼 보급으로 당시 한국의 ha당 쌀 수확량은 1972년 3.34톤에서 1977년 4.94톤으로 치솟으면서 국민들의 굶주림을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필자의 기억에도 생생하다. 키는 작아도 낱알이 수없이 달렸던 벼, 수확을 하려면 낱알이 쏟아져 아주 조심스럽게 낫질을 했던 기억이 난다. 탈곡을 위해 한곳에 쌓아놓은 볏가리 높이는 예년과 별반 다를 게 없었으나 수확한 가마니 수는 훨씬 늘어나 매우 기뻐하던 아버지와 큰형의 모습을 보고 옆에서 허드렛일을 돕던 어린 나도 덩달아 좋아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 다음해부터였던 것 같다. 봄에 어머니와 큰형수가 점심을 거르고 여름이면 감자 서너 알을 밥그릇에서 빼내 먹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어린 나는 어머니와 큰형수가 봄이면 속이 안 좋아 밥을 안 먹고 여름이면 감자가 좋아 보리밥 속에 감자를 넣어 먹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래서 나도 밥 속에 감자를 넣어달라고 생떼를 쓰기도 했었다. 그런데 어느 해부턴가 봄에는 쌀밥을 먹고 여름에도 보리와 쌀이 반반 정도지만 온전한 밥을 먹었다. 어머니와 큰형수도 물론 내 것과 똑같은 밥을 드셨다. 통일벼가 우리 집의 식량문제를 해결했으며, 전 국민을 '보릿고개의 고통'에서 구해낸 것이다.

통일벼 개발은 '아시아 녹색혁명'의 대표적 성공사례로 꼽힌다. 허 교수가 일으킨 녹색혁명은 지금도 베트남, 우즈베키스탄, 미얀마, 케냐, 브라질, 파라과이, 캄보디아, 필리핀, 콩고민주공화국, 알제리, 태국, 인도네시아, 가나, 에티오피아, 칠레 등으로 전파되고 있다고 한다. 조국 대한민국의 기아는 물론,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는 전 세계인들을 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토록 위대한 그는 충북 출신이다. 충주시 소태면에서 태어나고 자랐다.'통일벼의 아버지' 허 교수에 대한 업적을 기리기 위해 충주박물관이 지난 16일 선사박물관 내에 전시실을 조성해 유품과 일대기를 전시했다고 한다. 지난해 국립과천과학관 '명예의 전당'에 이어 두 번째다. 늦었지만 다행이다. 그는 갔지만 그의 혁명은 이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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