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쉽게 읽는 법
책 쉽게 읽는 법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1.12.15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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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책을 수면제라고 하는 사람이 많다. 나도 적지 않게 책을 냈지만 그것들이 쓸 데 없는 것이라 생각될 때가 많다. 어느 책 서문에는 이렇게 쓴 적이 있다.

"십대 때는 최현배 선생이 자기 책이 '간장 종지 덮는 데' 쓰였으면 하는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쉰을 바라보고서야 이제는 이해가 간다. 내 책이 '컵라면 덮는 데'라도 쓰였으면 좋겠다."('윤회와 반윤회-그대는 힌두교도인가, 불교도인가?', 2008)

공부하다 끼니를 놓쳐 억지로 컵라면이라도 먹어야 할 때, 나는 늘 어떤 책으로 덮을까 고민한다. 손에 잡히는 아무 책으로 할 때가 많지만, 역시 두께나 꼴로는 내 책이 제 격이다. 그것만이라도 유용함을 다행으로 여기는 시간이다.

책을 보면 왜 졸릴까? 그것은 그만큼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읽을 만하다면 잠이 달아나거나, 그렇지 않다면 자세라도 바로 잡을 터이다. 다들 맘에 드는 책에 빠져 밤을 새 본 적이 있지 않은가. 만화라도 좋고, 소설이라도 좋고, 다큐멘터리라도 좋다.

나는 늘 철학이 '청룡열차'처럼 재밌으면 하고 소원한다. 대한민국에 처음 나온 롤러코스터의 대명사는 단연 청룡열차였다. 언젠가는 내 책도 청룡이라는 이름이 붙는 제목이 나올지도 모른다. 그래봤자, '좌청룡 우백호'일 테지만.

내가 내 책을 보면서도 무슨 이야기인가 하고 묻게 될 때가 있다. 쓸 때는 생각의 길을 따라가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 다시 바라보면 그것이 끊어져 '뭔 소리야?'하고 되묻게 된다. 자신에게 '무슨 이야기냐?'고 물을 정도니 독자에게 자기 생각의 길을 무작정 따라오라고 강요하는 것은 지나친 요구일지도 모른다. 청룡열차의 궤적처럼 올라가고 떨어지고 도는 곡절과 전환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논리의 기승전결도 없이 밋밋한 글을 무턱대고 읽으라니 독자로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다.

대학시절 시험 때면 아무도 없는 도서관에서 홀로 시간 보내길 좋아했다. 어떻게 아무도 없냐고? 열람실이야 자리가 없이 꽉 차지만 오히려 서고는 텅 비어 시간을 보내기 딱 좋았다. 같이 놀던 친구들도 시험이랍시고 바쁘니 혼자 놀 수밖에 없었다. 그때 무턱대고 책을 쌓아놓고 읽기를 연습했다. 소설이나 희곡에서 잡다한 잡지는 물론, 고전부터 현대물까지 공연히 건드리며 시간을 보냈다.

그때 내가 깨달은 것이 하나 있었다. 내가 왜 사람들의 이야기를 못 알아듣는가를 고민했는데, 어느 순간 모든 작자가 지닌 공통점을 하나 찾을 수 있었다. 사람들은 어떤 말을 하면서 그 말에 '좋고 싫음'을 부여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민중'이라고 하면서도 누구는 좋게 쓰고 누구는 나쁘게 썼다. 때론 '계층'이라고 하는 이들이 있었고, 때론 '계급'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말마다 좋고 나쁜 것이 글쓴이에게는 주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어떤 개념이 나오면 학생들에게 묻는다. "그 말 좋은 뜻이야, 아냐?" 너무도 단순하지만 사상가마다 개념에 대한 좋고 싫음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찾는 것이 어려운 책을 읽는 비결 아닌 비결이고 사색의 입문인 것이다.

칸트가 루소의 책을 보면서 오직 한 번 산책시간을 놓쳤다고 한다. 그만큼 루소의 개념은 칸트에게 새로웠다. 묻는다. 본성(nature)은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칸트에게는 나쁘지만(인간성), 루소에게는 좋았다(자연성). 이는 마치 맹자에게 본성은 좋은 것이고, 순자에게 본성은 나쁜 것과 비슷하다.

과연 나의 이런 지나친 단순화는 좋은 것일까, 나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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