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해야 할 날치기의 정치역학
명심해야 할 날치기의 정치역학
  • 충청타임즈
  • 승인 2011.11.24 18: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주말에… 一筆
한쪽은 구국적 결단, 다른 한쪽은 매국적 폭거라고 강변하지만 결국 지난 22일의 한미 FTA 국회비준은 날치기라는 오명을 벗어날 수 없다.

잊을만 하면 재발하는 국회 폭력사태를 민주주의 상징쯤으로 치부하려는 여론도 있지만 그렇더라도 이번처럼 여당의원들이 마치 조폭들 작당하듯 본회의장에 몰래 틈입하고, 야당 의원은 이에 질세라 최루탄을 투척한 초유의 사태는 정치 후진국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말 그대로 폭거다.

헌정사를 보면 국회의 날치기는 궁극적으로 국가적인 큰 혼란 내지 변혁을 가져왔다. 이는 심판이 될 수도 있고, 하기좋은 말로 역사발전의 필연적 과정일 수도 있지만 그때마다 죽어나는 건 강요된 시행착오를 감수해야 하는 애먼 국민들이었다.

현존 국가보안법의 단초가 된 1958년 12월 국회는 날치기의 운명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집권 자유당은 국가보안법 통과를 위해 예의 경호권을 내세워 법안을 단독 처리한다. 이는 곧바로 민심 이반을 가져왔고 급기야 자유당은 4.19혁명을 만나 소멸하고 만다.

공교롭게도 박정희 정권 역시 똑같은 전철을 밟는다. 1979년 10월 4일, 여당은 눈엣가시 같은 김영삼 신민당 총재의 제명안 처리를 위해 국회경호권을 무기로 회의장을 옮기면서까지 징계안을 의결했다. 이에 야당 의원 전원이 사퇴와 함께 극한투쟁에 돌입했고, 이 여파로 10여 일 후엔 부마민주화운동이 촉발됨으로써 박정희 정권의 종언을 예고한다.

1987년 6월의 민주항쟁 역시 그 발아(發芽)는 9개월 전의 통일민주당 유성환 의원 체포동의안 날치기 통과로부터 시작됐다. 당시 집권 민정당은 “대한민국 국시는 반공보다는 통일”이라는 유 의원 발언을 문제삼아 독재정권의 정당성을 꾀하려 했지만 되레 역풍을 맞고 전 국민의 공분을 사게 된다.

가깝게는 1997년의 정권교체도 국회의 날치기가 원인이다. 선거를 통한 합법적 정권임에도 김영삼의 신한국당은 96년 말 복수노조 허용 등을 담은 노동법 개정안을 마치 특공대 작전하듯 단독 처리했다. 이는 곧바로 정권의 레임덕을 부추겼고, 뒤 이은 노동계의 대대적 파업과 한보사태, 김현철 비리 등으로 끝내 IMF 사태까지 초래한 YS는 쪽박을 찬 채 정권마저 넘겨준다.

지금도 국민들의 눈에 선한 2004년 3월 노무현 대통령 탄핵은 여당이 아닌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합작해 만든 날치기였는데, 두 당의 인과응보는 얼마 후 있은 17대 총선에서 참패로서 나타난다.

이러한 역사를 알기에 이번 한미 FTA 인준을 놓고 뜻있는 여야 의원들이 마지막까지 합의처리를 종용했지만, 한나라당은 다수라는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끝내 또 한 번의 날치기를 의정사에 남기게 됐다.

하루하루 먹고 살기에 급급한 대다수 국민들은 한미 FTA를 잘 모른다. 다만 그것이 시대적 추세이고, 때문에 언젠간 체결할 수 밖에 없다는 것쯤은 다 안다. 문제는 이번만큼은 달라지기를 바랐는데 그 ‘희망사항’이 깨졌다는 사실이다.

이 나라 대통령이 부시 앞에서 하얀 이를 모두 드러내며 일거에 쇠고기 협상을 몽땅 바치고(2008년 4월), 백악관에서의 도를 넘는 극진한 대접과 사상 초유라는 미 국방부 내의 MB에 대한 브리핑, 그리하여 다분히 정략적이라는 그런 분위기에 취해 선뜻 FTA 인준을 약속하는 이런 비굴함(2011년 10월)이 아닌, 적어도 국회에서만큼은 국가적 자존심의 당당함을 기대했는데, 또 기만당했다는 현실에 많은 국민들은 좌절하고 있다.

아울러 국민들은 여야가 합의해 단 5분 만에 일사천리로 인준을 의결한 미국 의회와, 최루탄이 터지는 난장판에서도 역시 단 5분 만에 날치기를 감행한 대한민국 국회의 차이점을 떠올리며, 자국의 이익에 철두철미하다는 미 의회가 왜 그랬을까를 몇 번이고 곱씹지 않을 수 없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